2024-04-20 11:08 (토)
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의 해방일지
  • 공윤권
  • 승인 2023.02.21 2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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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윤권   공정경남 상임대표
공윤권 공정경남 상임대표

최근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었다. 정지아 작가는 지리산 자락 구례에서 빨치산의 딸로 자라 평생을 빨치산의 굴레를 짊어지고 살았다. 연좌제가 있을 때는 빨치산의 딸로 연좌제의 굴레 속에 있었고 연좌제가 폐지된 후에도 빨치산 아버지의 가두리 속에 있었다.

그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작가는 너무나 재미있고 재치있게 풀어냈다. 자칫 무거울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쓰라린 상처를 작가는 뛰어난 글솜씨와 섬세한 구성으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장편 드라마로 그려내고 있다.

보통 책을 읽다 보면 문장력이 좋거나 구성이 좋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은데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문장력과 촘촘한 구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 사투리를 그대로 동반한 문장에서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을 때 경쾌함과 월든에서 느껴던 진지한 성찰이 모두 감지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아버지의 죽음부터 장례를 지내는 3일 동안의 시간 속에 지난 과거의 이야기를 등장인물과 함께 엮어내는 구성도 빼어나다. 어떻게 이렇게 문장과 구성을 완벽하게 완성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가의 글솜씨는 뛰어나다. 그동안 정지아 작가가 수많은 수상을 했던 이유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책의 재미를 떠나 나에게는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조금 더 반가운 이유가 따로 있다. 나의 본가가 구례 바로 아래쪽에 위치한 광양이고 외가가 섬진강 건너편 하동이다 보니 빨치산에 대한 이야기를 실제로 어른들에게 종종 들었던 기억이 있다. 소설 속 장면들 또한 어릴 적 뛰어놀았던 바로 나의 시골이다.

아버지의 사촌 아저씨가 빨치산에 총을 맞았다는 얘기, 옆 동네 누가 빨치산에 잡혀갔다는 얘기, 빨치산들 수십 명이 경찰에 잡혀갔다는 얘기를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터였고 막연하게 전설 속의 이야기로만 흘려들었던 이야기들이 이 책 속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책을 통해서 내가 들었던 이야기를 사실로 확인하는 반가움과 그 역사가 아직도 누군가의 인생을 옭매고 있다는 사실도 오싹하게 다가왔다. 한편으로는 약간의 동질감이 들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소설 속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평생을 무엇인가의 굴레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가 자리 잡은 지 수십 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 사회주의자의 사고와 방식으로 평생을 살다 간 빨치산 아버지의 모습은 시공간을 떠나 과거에 살고있는 현대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면이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하는 듯하다. 아주 오래전 사용됐던 주장과 용어들이 현재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당연히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독재타도를 여전히 외치고 있고 한편으로는 이제 남아있지 않은 빨갱이라는 구호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다. 해방된 지 78년이 지났는데도 친일파 척결을 주장하기도 한다. 아마 요즘 세대들은 정치권에서 난무하는 구호들과 외침이 상당히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나도 요즘 언론 기사를 보면 언제 적 기사인지 날짜를 확인할 때가 많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굴레에서 해방된 소설 속 아버지는 이제 역사 속으로 남겨두고 선진국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 걸맞는 성숙한 현실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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