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3:44 (금)
나라 밖을 내다보자 45
나라 밖을 내다보자 45
  • 박정기
  • 승인 2023.02.20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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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열정얘기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br>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사무라이들은 자기들의 주군 아사노를 죽게 한 원수를 갚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충성스러운 행동은 곧 문제가 되었다. 비록 주군의 원수를 갚은 것이지만, 평화로운 에도시대에 사무라이들이 때지어 쳐들어가 다른 영주를 살해한 것은 용서가 안 되는 일이었다. 사무라이들도 자기들이 용서받지 못하리란 것을 잘 알았다. 그들은 적장의 머리를 주군묘에 바치고, 막부의 명령에 따라 전원 할복자살을 한다.

이 사건은 `주신구라`라는 이름의 가부키 등 여러 장르의 작품으로 만들어져 18세기부터 오늘까지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그 인기는 우리 `춘향전`이나 `심청전` 이상으로 흥행한다. 이것은 일본 사회가 지금도 무사도 정신에 대한 향수가 있다는 증거이다. 즉 영주에 대한 충성, 충성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희생정신, 동지끼리는 끝까지 비밀을 지키는 신의를 아름답게 보는 풍조가 있다.

1945년 8월 15일 새벽 4시, 아나미 고레치카 일본 육군대신(장관)은 공관 뜰에 조용히 꿇어앉았다. 상반신을 나체로 드러낸 채. 지금 그는 일본 무사의 전총적 할복자살을 하려는 것이다. 곁에 시립(侍立)한 군인은 다케시타 중좌(중령). 아나미 장관과는 처남매부 사이다. 장관의 부인이 그의 누나. 타케시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각하, 남기실 말씀은?" "아내에게 뒷일을 잘 부탁한다고 일러주게." "그럼… 각하, 카이샤쿠는 제가…" 슬픔이 복받쳐 말을 잊지 못한다. "쓸데없다. 물러가라!" 아나미는 단도를 뽑아 거침없이 일자로 배를 그었다. 그는 해가 공중에 뜰 무렵에야 숨을 거두었다. 막심한 고통 끝의 절명이었다. 카이샤쿠를 거절한 대가다. 

아나미 육군대신은 `무조건 항복`을 반대했다. 연합군이 요구하는 무조건 항복에는 천황 존속을 보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위 국체(國體) 보존 조건이다. 육군성 군무국(軍務局) 내 엘리트들의 주장도 국체 보존이다. 국체 보존은 천황제 보존을 뜻한다. 천황은 일본 정신의 기둥이다. 자기들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근위(近衛) 사단과 동부군사령부(도쿄지역 담당)를 동원, 쿠데타로 국론을 뒤집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총리, 외상, 해군장관 등이 종전을 찬성하고 있는 터라 각의에서 종전 결정이 날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방 전날인 8월 14일 어전회의에서 천황이 포츠담선언을 받아들인다고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 이전 회의에 참석했던 아나미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천황이 전쟁을 반대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저렇게 단호히 전쟁을 끝내겠다는 태도에 정신이 아찔해진 것이다. 천황의 뜻은 성단(聖壇)이다. 군인은 어떤 경우에도 성단은 따라야 한다. 그게 제국 군인이다. 그러나 자신의 신념에 반(反)한다. 부하들과의 약속도 있다. 군무국 엘리트 다케시타 중좌가 찾아왔다. 그도 쿠데타 주모자 중 하나다. 

"각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성단을 따르겠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내 몸을 밟고 넘어가라!" 순간 다케시타의 정신이 무너졌다. 무너진 것은 다케시타만이 아니었다. 아나미는 그때 죽음을 생각하였다. 나를 따르던 부하들과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다. 그렇다고 천황을 거역할 수도 없다. 그가 살아온 보람은 두 가지, 부하와 천황이다. 지금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는 천황을 선택했다. 대의(大義)를 위해서다. 그러나 소의(小義)를 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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