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9:30 (금)
옥외광고물법 개정 유감
옥외광고물법 개정 유감
  • 이광수
  • 승인 2023.02.19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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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방담이광수 소설가
춘추방담
이광수 소설가

 

지난해 12월 6일 옥외광고물법 제8조 8항(적용배제)이 일부 개정되어 12월 11일 시행과 동시에 동년 12월 6일 옥외광고물법시행령이 개정되어 12월 11일부터 시행하게 되었다. 한 해 수천 건의 법안이 제출되지만 수년이 지나도 먼지를 보얗게 뒤집어쓴 채 심의조차 안 된 각종 민생법안들이 부지기수이며 자동 폐기 되기 일쑤다. 그런데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여야정치인들이 죽이 맞아 이 법을 개정했으니 자기이익보호에 솔선수범한 셈이다. 이번에 개정된 옥외광고물법 제8조8항은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을 표시하는 현수막(플래카드)은 설치 허가 및 신고 대상에서 제외시킨 개정안이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활동 홍보수단인 현수막을 지정 게시대가 아닌 도시 어느 곳에 설치해도 좋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현수막 설치가 법과 시행령으로 금지된 구역은 있으며, 그건 허가신고대상 여부를 떠나서 마찬가지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입법 권한을 남용해 자신들의 정치활동 홍보를 자유롭게 하겠다는 의도인데 그게 잘못된 결과를 유발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시내에 나가보니 구정을 계기로 명절인사 현수막이 도심교통요충지 사거리에 내걸리더니 요즘엔 여당의 정부정책 홍보나 야당이 다른 정당을 비방하는 성토용 현수막들이 내걸리기 시작했다. 물 만난 고기 형국이다. 도시경관을 망치고 공공시설물을 망가뜨릴 위험성이 다분한 현수막의 무질서한 난립은 도시미관저해의 암적인 존재이다. 신ㆍ구도시를 막론하고 무질서한 정치현수막의 난립은 도시미관 뿐만 아니라 교통안내표지판과 상가안내간판을 가려 문제가 될 소지도 다분하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점은 강풍이 불면 도시교통신호기와 교통표지판, 가로수, 가로등에 걸쳐서 설치한 현수막의 지주가 흔들려 도복될 경우 길가는 사람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통합 전 구 창원시는 해방 이후 한국 최초로 조성된 창원공단 배후계획도시다. 사통팔달 격자형으로 시원하게 뚫린 도시가로망은 타지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부러워한다. 1980년 4월 1일 출범한 계획도시 창원은 4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당초 설계한 도시계획이 누더기처럼 변질되어 볼품없이 돼버렸다. 그러나 도시가로망은 40년 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계획도시 창원의 마지막 상징으로 남아있다. 신도시 출범과 함께 창원시에 전입한 필자는 계획도시 창원의 마스트 플랜을 보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건설을 위해 봉사하게 된 것을 일생의 영광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계획도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각종 위법과 불법행위(무허가 시설물, 대형포장마차, 불법광고물, 도시가로변 도로적치물)를 엄격하게 단속하는 120기동대까지 운영해 매일 순찰했다. 특히 광고물관리부서 재직 중에는 도심 곳곳에 난립하는 불법 현수막을 어떻게 하면 근절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순찰 중 철거해 오는 불법 현수막이 하루 한 트럭 가득한 것을 보면 기가 막혔다. 광고물 제작사를 설득해 자율단속을 독려했지만 도둑도 도망갈 퇴로를 열어놓고 쫓으라고 했듯이 대안 없는 단속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이었다. 필자를 비롯한 직원들이 광고물 단속으로 날밤을 지새우다가 묘안을 짜낸 것이 바로 지금의 철제현수막 게시대였다. 철제 동 파이프로 튼튼하게 제작해 설치자가 타고 올라가 현수막 게시가 가능토록 고안했다. 우선 1차로 소계동대로입구 삼거리, 반송2단지 앞, 시청 남쪽에 5단 플래카드 게시대 3개를 설치하고 그 외 장소에는 플래카드설치를 금지시켰다. 그 후 계속 게시대를 늘려 골치 아픈 플래카드 무단설치문제가 해결되었다. 그 당시 내무부(현행자부)에서는 창원시의 수범 사례를 본받아 전국 지자체에 창원시의 모형을 본 딴 플래카드 게시대를 설치토록 지시했다. 이로써 우리나라 현수막 설치 게시대의 효시는 창원시가 되었다. 지방행정의 요체는 현장행정이다. 현장에서 문제점을 찾아야 `궁즉통(窮卽通)`이라고 그 해답이 나온다. 책상머리에 죽치고 앉아 컴퓨터 자판기만 두들기면 민생행정은 도로 아미타불이다. 

이처럼 도시경관을 망치는 현수막의 난립을 간과한 국회의원들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스스로 무너뜨린 셈이다. 민생을 떠난 정치는 죽은 정치요, 정치인 그들만의 잔치일 뿐이다. 왜 정치활동 홍보는 자유이고 민초들의 홍보행위는 통제받아야 하는가. 정치우월주의 사고는 왕조시대의 유물인 관존민비사상의 연장선일 뿐이다. 게시대가 시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도 불법 광고물이 판치는데 옥외 광고물법 개정으로 도심가로는 볼썽사나운 정치홍보 현수막으로 넘쳐날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87%가 정치인을 불신하는 이유는 바로 정치우월의 특권의식 때문이다. 앞으로 상대비방성 프로파간다가 난무하는 흉물스러운 정치 현수막의 도심난립은 명약관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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