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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역사학자 김승학ㆍ손진태ㆍ홍이섭
민족주의 역사학자 김승학ㆍ손진태ㆍ홍이섭
  • 이헌동
  • 승인 2023.02.16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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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김승학은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독립운동가로 상해 `독립신문` 사장ㆍ임시정부 학무국장ㆍ참의부 참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5년간 일제에 의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병도ㆍ신석호는 해방 후 어떻게 한국사학계를 장악했는가`라는 책의 저자인 김병기 박사가 그의 증손자다.

김승학은 상해에서 임정 2대 대통령 박은식 선생이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서술할 때 사료수집을 도왔다. 이때 두 선생은 "지금은 우리가 피눈물의 역사를 쓰지만 해방 후에는 나라를 찾은 기쁨의 역사인 `한국독립사`를 저술하자"고 맹약했다.

그래서 김승학은 참의부 참의장으로서 한 손에는 총을 들고 일제와 싸우며 역사사료를 모으고 역사서를 저술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일제강점기 민족지도자들의 역사관 및 국가건설론연구` 프로젝트의 11번째 책이 `총을 든 역사학자, 김승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승학은 1929년 만주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팔다리가 부러지는 숱한 악형에도 사료를 지켰다. 이런 자료와 독립운동가들의 자필이력서 등을 토대로 1965년 `한국독립사`를 출간했다.

독립운동가들이 직접 저술한 1차 사료인 `한국독립사`는 절판된 지 오래고, 국한문혼용체여서 일반 국민들은 구입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읽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은 김승학 자료를 기증받는 조건으로 `한국독립사` 해제 및 재출간 사업을 진행하였다.

이 사업은 평가에서도 좋은 평점을 얻었는데 문재인 정권에서 진보사학자 안병욱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이 되자마자 강제 중단시키고 출간금지 조치를 내렸다. 진보사학자들의 이런 행태는 `고조선 논쟁과 한국 민주주의` 책과 `이병도ㆍ신석호는 해방 후 어떻게 한국사학계를 장악했는가`라는 책을 읽어보면 그 실상을 알 수 있다. 아래의 글은 거기에 언급되어 있는 것이다.

"고조선 문제는 진보사학계의 모든 치부가 응집된 곳이다. 친일파 청산을 외치는 그들이 얼마나 식민사학 경향을 지닌 친일파들과 연합하는지 알 수 있고 얼마나 반지성적 맹목에 빠져 있으며, 인권을 말하는 그들이 얼마나 반인권적일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또 정의를 말하는 그들이 얼마나 속된 파벌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는가를 보여준다.

강만길은 진보사학계의 태두 중 한 분으로 노무현 정권 때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하면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정한 친일파 명단에서 자기 스승인 식민사학자 신석호ㆍ이병도를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서 제외하고 애꿎은 이능화만 선정하였다. 그 이유는 바로 강만길의 사적 인연에 의한 역사 단죄의 사유화에 의한 것이다. 이병도ㆍ신석호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만 오른 연유가 여기에 있다. 파벌과 인맥과 친분 앞에서 친일파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친일파 문제를 제기한 자신들이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에서 스승 신석호를 극구 변호하고 칭송했다. 그러면서 민족주의 사학자인 신채호를 `관념성과 정신주의적 제약이 많은 학자`로 규정했다.

그는 근현대사학자로 고대사는 잘 모르면서 신채호를 이렇게 규정한 것은 과학적 지성을 누구보다 강조하는 진보사학의 지독한 모순이다. 그들이 저항했던 군사독재의 행태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진보사학계의 비틀리고 무지한 반지성적 이데올로기 전통이 여기서 싹텄다. 강만길의 신채호 평가는 진보사학계에서 사이비종교 교리처럼 이어진다. 진보사학계가 학문적 지성이라는 측면에서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가를 시험한다." 이런 경향이 문재인 정권 시절 역사교과서에서 홍익인간을 삭제하였다.

손진태는 1933년 조선민속학회를 조직하여 한국최초의 민속학회지인 `조선민속`을 간행하였다. 민속학을 학문으로 정립시킨 민속연구 결과로 문헌에만 의존하는 한국사연구가 빠지기 쉬운 좁은 안목으로부터 벗어나 넓은 시야를 갖출 수 있었다. 역사학은 물론 인류학ㆍ고고학ㆍ사회학 등 인접과학을 폭넓게 원용하여 민속학 연구방법의 차원을 높였다.

신민족주의사관(민족 내부의 균등과 단결에 기반한 민족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한국사를 서술하자는 역사관)에 입각하여 `조선민족사개론` 등을 저술하였다. 서울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거쳐 문리과대학장에 재직 중인 6ㆍ25 때 납북되지 않았더라면 서울대 사학과가 이병도 일색의 식민사학 유풍이 되지 않고 민족주의 역사학풍이 주도하였을 것인데 아쉽다.

홍이섭은 과학연구를 통해 민족문화 발전과정을 고찰하여 민족주의 역사학의 새로운 장을 개척하였다. 고조선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의 과학의 발달을 고찰한 `조선과학사`를 저술하였다. 언제나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한국사 연구 태도에 매우 비판적이었는데 지난 1960년대부터는 한국의 독립운동사 연구에 골몰하여 그 시대의 정신사를 연구과제로 삼았다.

한국의 문학작품을 한국사 연구에 활용하는 가능성도 보여 주었다. 문학작품을 통해 그 시대의 사회적인 현실과 시대정신을 인식하고 이해하고자 했다. 이 같은 방법은 한국사 연구에 새로운 접근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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