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2:04 (금)
나무에 인문학을 담다
나무에 인문학을 담다
  • 최현옥
  • 승인 2023.02.16 2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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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옥   김해나섬목공예 대표
최현옥 김해나섬목공예 대표

나무라는 것이 본래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나무가 갖는 한의학적 약성을 떠나서라도 나무가 주는 심리적 평온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나무를 찾아 산을 오르고 타닥타닥 타는 나무를 보며 생각에 잠기기 위해 캠핑을 떠난다.

필자가 목공을 직업으로 삼기까지 다양한 어려움이 있었다. 처음엔 지인의 권유로 나무를 접하게 되어 가볍게 시작한 취미였고 여자가 하기에는 날카로운 기계ㆍ무거운 도구들이 두렵기만 했다. 그러나 나무가 깎여나가는 소리가 정겹게 들리고 끌에 부딪히는 망치 소리로 시작한 큰 나무토막이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가 원초적 모습에서 하나의 형태가 완성될 때 비로소 죽은 나무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희열로 다가왔다. 그것이 지금까지 내가 목공을 하게 만든 힘일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막막함이 느껴졌다. 내가 가진 역량은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은데 나만의 목공에 무엇을 담을까 하는 고민이 커져만 갔다. 그 심연의 깊이는 모르지만, 인문학을 담아보자는 것이었다.

사람도 원래 본바탕에 교육함으로써 새로운 사람이 된다. 경남도 교육청의 이동식 작업장으로 `카멜레온`을 만들었는데 그 프로그램에 목공 파트를 맡게 되었다. 미천한 실력으로 겁 없이 카멜레온 수업에 참여하게 되어 큰 영광만큼 두려움도 있었다.

어린 학생들에게 어떤 목공을 가르칠까, 어떤 인문학적 목공 수업을 할 것인가 수업하는 내내 엄청난 숙제였다. 근데 이상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보다 내가 더 성장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길을 아이들이 내게 깨닫게 해 준 것이었다.

엉성하게 만든 의자가 편하지는 않고 세련되지도 않지만, 정감 있고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했다. 소재로 사용하는 들꽃 하나에도 의미를 찾아 관찰하고, 나무의 나이테 속에 가뭄이나 장마의 모습들을 설명해 사람의 지문처럼 수많은 나무 중에도 같은 결을 가진 나무는 없음을 말해주었다.

어느 날 양산의 초등학교 4학년 수업이 있었는데 그날은 등긁이를 만들기로 했다. 그날은 나무 재료 중 일부가 `연수목`이라는 나무로 사람의 목숨을 이어준다고 하여 건강을 상징하는 나무라고 설명했다. 다 만든 뒤에 학교에 계신 고마운 분들께 선물하자고 하니 한 친구가 "저희 엄마가 백혈병에 걸려 병원에 계시는데 아프지 않고 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 엄마에게 드려도 돼요?"라고 질문했다. 연수목의 의미를 그 아이는 허투루 듣지 않았나 보다. 그날의 수업은 아이들이 내게 큰 깨우침을 주는 스승이었다는 것을 알게 한 수업이었다. 그리고 내가 목공을 시작하면서 나에게 담고자 했던 인문학이 내게 이토록 큰 기쁨을 안겨줘 참 행복했던 수업이었다. 다시 인문학에 대해 고민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삶을 살아가는 것은 설명이 아니라 경험을 해야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논어에 `학습 없는 생각은 위험하고 생각 없는 학습은 허망하다`라고 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듯 나는 카멜레온 수업때 만났던 어린 스승을 늘 떠올리며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수업을 준비할 것이다. 다음 수업에는 어떤 스승을 만나게 될지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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