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증의 체계적 유물 인상" 평가
습도ㆍ온도 등 쾌적… 기획 의도 연결
가야 전사 갑옷ㆍ투구ㆍ 말 갑옷 `강조`
어린 아이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구축
실감형 콘텐츠 살아있는 역사 형상화
"호기심 충족되는 다채로운 공간 조성"
`연인이 손을 잡고 가야 문화재를 감상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깨끗한 진열창 안의 가야 문물은 마치 백화점 신상처럼 잘 손질돼 빛나는 조명을 받고 있다. 곳곳에 미디어아트 작품이 현대적 감성을 자극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이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정답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곳은 바로 `국립김해박물관`이다.
오래전 박물관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박물관을 상상할 것이다. 연인들의 박물관 데이트라니 말도 안 된다고 헛웃음을 지을 만도 한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 김해 구산동에 있는 `국립김해박물관`은 실제 많은 연인의 데이트 장소가 되고 있다. 예전의 박물관이 역사 유물 전시실의 역할을 지녔다면, 지금의 박물관은 정보 전달 기능을 넘어 예술적 감성과 문화 욕구를 충족시키고, 휴식 공간의 역할까지 담당한다.
역사와 문화의 공약수를 잘 버무린 솜씨 좋은 박물관 지킴이, 이정근 관장을 만나봤다. 이 관장과 국립김해박물관은 인연이 깊다. 2000년 국립김해박물관의 학예사로 재직하며 박물관과의 첫 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고고학 석사로 `가야토기 제작`을 전공한 그는 가야의 문물과 역사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 학예사, 학예관을 거쳐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을 역임했다. 지난 2019년 다시 국립김해박물관 학예연구실장으로 돌아와, 마침내 지난해 국립김해박물관 관장으로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 관장은 박물관 홈피를 통해 `국립김해박물관은 가야역사와 문화를 보존, 전시하기 위한 고고학 중심의 박물관이다. 가야 연구의 핵심 센터 기능을 강화하고, 역사와 문화가 생동하는 박물관을 실현해 복합문화공간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장은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정 등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김해는, 가야와 많이 닮아있다고 말한다. 그는 김해가 나아갈 방향이 `공존, 번영, 화합`임을 강조한다. 그것이 살아 숨 쉬는 가야역사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공동번영의 열쇠`라고 역설한다.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시민에게 알리기 위한 노력은 박물관을 둘러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 관람객은 창녕 비봉리 유적에서 출토된 신석기 시대의 통나무배 전시를 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를 보고 놀랐다. 역사적 고증에 의한 체계적 유물 전시가 인상적이다"라고 말했다. 찌르개, 긁개, 흑요석 화살촉 등의 전시품은 수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당시 사용 모습이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문헌 자료인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가야에 대한 기술이 많지 않다. 그래서 유적유물이 매우 중요하며, 특히 가야역사는 김해를 사는 우리의 정체성과 연관돼 대단히 중요한 숙제다. 요즘 민감한 쟁점이 되는 가야의 국토경계선 또한 여러 나라에 흩어져있는 문헌 자료를 중심으로 많은 역사학자에 의해 신중하게 검토되고 있다. 가야유물의 역사적 가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들이 쓴 물건 속에는 당시의 사회상이 여과 없이 반영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농사를 지었으며, 얼마나 부강했는지, 유물은 거짓 없이 보여준다.
국립김해박물관은 습도와 온도, 조명이 대단히 쾌적하다. 전시품에 따라 발길이 빨라지기도, 느려지기도 하며 화려한 미디어아트 앞에서는 멈추기도 한다. 이 모든 동선과 호흡은 박물관의 기획 의도와 연결돼 있다. 모두 똑같이 중요도를 주지 않고 곳곳에 악센트를 줌으로써, 박물관의 모든 유물이 살아 숨 쉬는 역사의 소품이 됐다. 특히 이곳의 하이라이트를 들자면 2층 전시실에 있는 가야 전사의 갑옷과 투구, 그리고 말 갑옷과 투구일 것이다. 마치 진시황의 무덤 안 병마용을 연상시키는 이 전시는, 당시 무게로 5㎏이 넘는 전투용 갑옷을 제작할 정도의 뛰어난 기술을 말해준다. 가죽끈이나 깃털 등으로 장식한 이 철갑옷은 당시 쇠를 다루는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백마에 전쟁용 안장과 발걸이, 장식구를 입힌 말 전시물은, 유물 전시를 뛰어넘어 예술 조형물을 연상시킨다. 마치 보이지 않는 장군이 완전무장한 말 위에 올라타 금방이라도 진격을 명령할 듯한 긴장감이 압권이다. 말머리 가리개, 말 갑옷, 발걸이, 금동말방울 등의 역사 유물 공부는 덤이다.
국립김해박물관은 특히 어린이 박물관이 인기다. 이 관장은 호기심 많은 어린이의 특징을 고려해 체험 중심의 전시물과 상주하는 전시해설자를 두어 아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구축했다. 김해가 자랑할 만한 박물관 이벤트로는 `국립김해박물관 가야웹툰 공모전`이 있다.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창의적인 콘텐츠 발굴을 목적으로 지난 2018년부터 매년 개최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국립중앙박물관장상, 김해박물관장상 등 다양한 시상으로 지역민의 참여를 유도하는데 성공했다. 또 수상작 전시와 함께 역사만화 서적을 소개하는 `가야만화방`도 인기다. 많은 시민들이 아이들과 함께 `가야만화방`에서 만화 삼매경에 빠진 즐거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번 행사는 올해 하반기로 계획 중이다.
"국립김해박물관은 아이들과 함께 체험학습으로 오기에 좋다. 예전에는 박물관에서 유물과 정보를 보는 것이 끝이었는데, 지금은 홈페이지가 아주 잘 돼 있어 먼저 보고 간다"고 한 관람자는 말했다. 실제 국립김해박물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모든 정보가 자세하고 알기 쉽게 기술돼 있다. 유물 하나하나의 역사적 배경과 환경, 연계된 다른 지역 정보와 샘플 사진까지, 아이들 체험학습에 최적화돼 있다. 학교 과제 준비나 시험 등의 목적에 맞게 학술적 성격도 강하다.
어린이 박물관 영상체험실에서는 유아를 대상으로 이뤄진 `가야랑 나랑`, `가야나라 공작소`, `가야의 보물`, `조물조물 가야유물 모양찍기`, `구석구석 가야 여행` 등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이들은 다음 세대에 대한 정체성 찾기의 성격이 강하다. 영유아가 부모와 매일 소통하고 부대끼며 가족의 일원이 되듯, `나의 뿌리`를 놀이 교육을 통해 접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같은 맥락으로 청소년을 상대로 한 `꿈꾸는 박물관`, `가야문화재 지킴이`, `안녕? 국립김해박물관` 등이 있다. 또, 학교와 협업해 `우리동네 문화재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진행해왔다. 성인을 대상으로 가야 캔들, 가야 가방, 계묘년 토끼 가방 만들기 행사와 `작은음악회` 등의 공연을 진행한 바 있다.
다양한 실감형 콘텐츠로 살아있는 역사를 형상화한 박물관 2층은 관람자의 발길이 오래 머문다. "공간에 따라 그에 맞는 감성적 음악이 깔리면 어떨까 상상한다. 그 시대를 살던 사람 냄새가 나지 않을까, `그들이 기쁨과 슬픔, 고통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결국 그 시절도, 지금도, 이 땅을 사는 `사람의 발자취`이기 때문이다" 이 관장은 실제 전시품을 관람하던 중 가수 김광석의 음악을 들으며 놀라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인간이 가진 가장 뛰어난 재능은 상상력일 것이다. 음악과 전시품이 만나 최고의 상상력과 감성을 끌어낸 그때의 감동은 아직도 그를 들뜨게 한다.
이정근 관장은 어떠한 혁신적 아이디어라도, 어떤 이에게 불편이 될 수도 있다면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중하고 또 신중하다. 그러나 한번 결정이 내려지면, 기존 틀을 깨고 구시대의 사고를 바꾸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소규모 강연이나 북 콘서트, 전시장 관람 전 이벤트 공연을 위해, 작은 공간을 준비 중이다. 공연이나 전시 공간에 목마른 기성 활동 예술인에게 무대를 제공하고, 시민의 문화 욕구 충족을 위해 다양한 볼거리를 기획하고 있다고 말한다. 해금, 가야금, 바이올린 등의 공연 예술 활동도 염두에 두고 있다.
"백화점이나 놀이동산보다 박물관이 재미없다는 인식은 바뀔 것이다. 요즘 전시회에서 찍은 인생샷은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예전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문화적 욕구와 소속감, 호기심이 충족되는 다채로운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인스타나 페이스북에 올려 `좋아요`를 즐기며, 젊은이와 어르신, 어린이가 함께 향유하는 쾌적하고 재미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이 관장은 포부를 밝혔다. 그 일환으로 2층 전시실 한쪽 벽에 카페 같은 휴식 공간을 두고, 가야유물 전시에 조형적 요소를 강화했다. 앉을 곳 하나 없이 빽빽하게 유물이 차지하던 벽은, 이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깨끗한 전시품과 실감형 콘텐츠가 자리하고 있다. 더이상 유물이 고리타분한 옛것이 아니며, 역사책 속에 있는 죽은 학문의 산물이 아님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가야유물은 흥미롭고, 친근하며, 재미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미래로의 힌트를 주는 통로이자 수수께끼의 공간이다. 셜록 홈스의 돋보기를 들고 국립김해박물관으로 가보자. 그 비밀의 공간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혹시 아는가. 신석기 시대의 신비한 마법의 돌을 발견해 모험을 떠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