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9:30 (토)
영화 `화양연화`
영화 `화양연화`
  • 이광수
  • 승인 2023.01.29 2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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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방담이광수  소설가
춘추방담이광수 소설가

영화 화양연화(花樣年華 :In The Mood For Love)는 홍콩배우 양조위와 장만옥이 열연한 로맨스 영화로 지난 2000년 개봉된 후 2020년 재개봉되었다. 프랑스ㆍ홍콩 합작영화로 홍콩감독 왕가위가 메가폰을 잡고 크랭크인했다. 영화 제목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뜻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누구나 좋아할 만큼 로맨틱하다. 주씨(양조위 분)와 진부인(장만옥 분)은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이다. 두 사람은 각자 혼인한 상태지만 둘의 배우자가 서로 눈이 맞아 바람이 나서 외국으로 떠나 버린다. 그렇게 남겨진 두 사람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는 가운데 서서히 가까워지면서 사랑에 빠져든다. 법적으로는 유부남, 유부녀인 두 사람의 관계라 불륜으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사랑에 배신당한 두 사람의 가슴앓이에서 비롯된 사랑이라 그런 느낌은 없었다. 요즘엔 배신당한 배우자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륜을 저지른다지만 이 영화는 그런 복수심과는 차원이 다르다.

필자도 20여 년 전 본 영화라 기억이 아득해 상세한 줄거리가 잘 떠오르지 않지만 양조위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한 구멍에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고`라며 속삭이고는 진흙으로 봉하고 떠나는 장면은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그는 `지나간 날들은 기억한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하여 과거를 볼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는 대사 자막이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필자 자신도 지극히 우연이겠지만 만약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그 같은 사랑을 애써 피하거나 외면하면서 거역할 수 없었을 것 같다.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사자성어에 담긴 한자적 의미에 대해 풀어본다. 화(花)는 꽃, 양(樣)은 모양, 년(年)은 해ㆍ시절ㆍ때, 화(華)는 빛남으로 `꽃같이 빛나던 시절` 또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 정도로 직역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은 `화양연화` 같은 아름다웠던 순간이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가장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 사라지지 않는 인생 최고의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과거라는 시간 속에 묻혀버린 지난 일이기에 애써 들춰내기 싫거나 쑥스럽지만 기억의 창고 속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저장되어 있다. 희망한 대학교에 합격한 날, 자신이 원한 직장에 첫 출근한 날, 어느 봄날 내게 다가온 사람을 만나 사랑을 시작한 날, 결혼과 함께 첫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부모가 된 날, 바라던 일을 이루고 작지만 성공이라는 성취감을 느끼게 된 날, 남으로부터 최고라는 찬사를 받을 경지에 이를만한 능력자가 된 날 등 저마다 간절히 갈구하던 일을 이룬 빛나는 순간이 바로 `화양연화`이다.

다시 영화 `화양연화`로 되돌아 가보자. 영화 속의 아름다운 배경과 두 사람이 나누는 달콤한 대사, 멜랑콜리한 배경음악까지 모든 게 의미 있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필자나 영화 관람자 모두가 기대했던 해피 엔딩이 아닌 슬픈 결말로 끝나버린 라스트 신이 너무 안타까워 눈시울을 붉혔었다. 인간의 도덕관념과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불쑥 찾아오는 특별한 느낌, 그러나 서로를 향한 사랑의 감정이 깊어 갈수록 곱지 않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냉소가 싫어 자신이 떠남으로써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남자는 그녀 곁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뜨거운 사랑을 나눈 두 사람은 기약 없는 작별을 고한다. 어긋나기를 반복해 가며 세월 속에 흘러가 버린 사랑의 찬가는 망각이라는 편리한 수단에 의해 잠시 잊게 된다. 그러나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인 `화양연화`는 결코 잊히지 않는다. 두 사람은 각자 서로를 그리워하며 끊어진 사랑의 흔적을 찾아 가지만 지난날의 사랑은 결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두 연인은 서로를 낡아 빠진 사진첩의 빛바랜 사진처럼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는 것으로 영화의 엔딩 자막이 흐른다.

비록 떳떳하지 못한 사랑이었지만 변명의 여지는 충분히 있기에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은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되었다. 그것은 두 사람이 이성과 본능의 갈등으로 고민하고 저항하다 결국 서로의 감정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적 정황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표리부동한 사람들은 자신의 불륜은 사랑이고 타인의 사랑은 불륜이라고 비난하며 몰아세운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런 비난이 사랑을 고통스럽게 한다. 결국 두 사람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누구나 일생에 한두 번은 겪는 이루지 못한 사랑의 추억을 소환하는 명화이다. 항상 마음을 다잡고 자기 인생의 매 순간을 `화양연화`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그때 그 시절의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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