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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이③ 에릭토니우스와 특허괴물
아테나이③ 에릭토니우스와 특허괴물
  • 허성원허
  • 승인 2023.01.17 2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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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야해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아테나 여신은 결혼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처녀라는 뜻의 파르테노스(Parthenos)가 이름에 덧붙여져 `아테나 파르테노스`라고도 불리고, 그녀의 신전 이름도 파르테논이 되었다. 그런데 이 처녀 신에게 아들이 있다. 그 이름은 에릭토니우스(Erichthonius)이다. 에릭토니우스의 탄생 이야기는 조금 선정적이다.

아테나가 트로이 전쟁에 쓸 무기를 만들기 위해 대장장이 신인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을 찾아간 적이 있다. 헤파이스토스에게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는데, 바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이다. 그녀는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주체할 수 없는 바람기 때문에 헤파이스토스를 힘들게 하였다. 아프로디테의 외도 파트너는 다름 아닌 아테나의 라이벌인 전쟁의 신 아레스였다. 가엾은 헤파이스토스는 아테나가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포세이돈의 부추김으로 인해 아름다운 아테나가 찾아오자 음심을 누르지 못해 자제력을 잃었다. 그는 아테나의 청을 흔쾌히 승낙하는 척하면서 방심하고 있던 아테나를 덮쳐 겁탈하려 든 것이다.렬깜짝 놀란 아테나는 헤파이스토스를 격렬히 밀어내었다. 하지만 그 순간 헤파이스토스는 그의 정액을 아테나의 허벅지에 배출하고 만다. 아테나는 그 불결한 배설물을 양털로 털어내고 떠났다. 그런데 땅에 떨어진 그 욕정의 배설물은 엉뚱하게도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수태시킨다. 그로 인해 가이아는 뜻하지 않게 아기를 낳았는데, 그 아기는 인간의 상체와 뱀의 하체를 가진 반인반사의 괴물이었다. 가이아는 그 아이를 아테나에게 억지로 떠넘기고, 아테나는 어쩔 수 없이 떠맡아 에릭토니우스라 이름을 붙여 기른다.

에릭토니우스는 비록 괴물의 모습이었지만 아테나의 보호와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서, 당시의 왕인 암픽티온을 몰아내고 아테나의 왕이 된다. 왕이 된 에릭토니우스는 아테나를 더욱 숭배하고, 자신의 보행 불편을 보완하기 위해 전차를 발명하기도 하며, 아테네를 나름 잘 다스렸다. 그리고 사후에는 제우스에게 그의 충정을 인정받아 천상에 오르게 되어, 겨울철 별자리 중 마차부자리(Auriga)에 영구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에릭토니우스 이야기는 최근 특허 관련 뉴스에서 자주 거론되는 특허괴물(Patent Troll)에 비유할 수 있다. 특허괴물은 NPE(Non-practicing Entity)라 불리는 특허전문기업이다. 이들이 특허를 보유하는 목적은 특허 기술의 실시하는 데 있지 않다. 특허 기술을 쓰는 기업을 찾아내어 특허로 공격하여 금전적 이익을 위하는 것이 그들의 비즈니스모델이다. 특허괴물은 세계적으로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에서만 지난 5년간 특허괴물로부터 300건이 넘는 특허소송을 당했다. 생산 기반 없이 특허만을 가지고 휘두르기에, 대응 공격을 할 수 없으므로 무척이나 곤란한 존재들이다.

아테나가 수호하는 특허제도는 발명자나 창작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특허제도를 오직 이익추구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 특허괴물이다. 특허괴물은 기술과 욕망이 자본주의 하에서 특허제도에 빌붙어 만들어진 사생아로서, 헤파이스토스가 아테나를 범하려다 가이아를 통해 에릭토니우스가 생겨난 것과 그 상황이 닮았다. 기술과 욕망은 헤파이스토스의 것이고, 아테나는 특허제도의 수호신이며, 대지의 신 가이아는 경제활동의 밑바탕 즉 자본주의에 비견된다. 그런 공통의 환경 요소들이 절묘하게 조합되어 에릭토니우스와 특허괴물이라는 존재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아테나(특허제도)는 헤파이스토스의 기술을 존중하지만 그의 부적절한 욕망은 결연히 거부하였다. 하지만 원치 않게 태어난 에릭토니우스(특허괴물)는 받아들인다. 괴물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탄생을 스스로 책임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에릭토니우스든 특허괴물이든 그 탄생의 책임은 그를 둘러싼 환경 요인들에 있다. 아테나가 에릭토니우스를 아테네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듯, 특허괴물도 부득이 특허제도가 포용할 수밖에 없다.

창의력의 인간과 욕망 본능의 파충류로 이루어진 에릭토니우스가 결국 아테네의 왕이 되었다. 이처럼 특허제도도 특허괴물의 지배하에 들고 말 것인가. 발명을 보호하여 인류의 삶에 기여하려는 고결한 취지는 흐려지고, 특허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이용하려는 저열한 탐욕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 특허제도는 이미 파충류의 본능 쪽으로 기울어진 듯하다. 하지만 특허괴물이 번성하고 특허가 남용되어 오히려 기술 혁신의 숨통을 조이는 이런 모습은 수호신 아테나가 그리는 특허제도가 아닐 것이다. 그 불합리를 개선광정할 아테나의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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