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3:00 (금)
금기어가 판치는 세상
금기어가 판치는 세상
  • 류한열 기자
  • 승인 2023.01.17 2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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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열 서향만리류한열  편집 국장
류한열 서향만리류한열 편집 국장

시대마다 금기어가 있어 대화에 간혹 불똥이 튀기도 했다. 금기어는 시대의 아픔을 품고 있다. 요즘 정지아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면 `빨갱이`가 옆집 할아버지처럼 다가온다. 두세 정권을 뒤로 물리면, 빨갱이는 무시무시한 단어였다. 서슬퍼른 정권의 칼이 빨갱이를 가혹하게 다뤘다. 빨갱이는 상종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일단, 요즘 빨갱이는 진짜 가짜를 떠나 자신과 반대 줄에 서 있으면 나쁜 사람으로 바뀐다. `빨갱이 빨갱이`하다 보니 속에 품었던 빨간 물은 빠지고 거죽만 남아 친근한 빨갱이가 됐다. 금기어는 세월을 타고 우리의 삶에 보통의 말이 됐다.

역사는 분명 주류의 기록이다. 세월의 질곡을 타고 남은 자의 행적이 역사의 주능선을 이룬다. 잊혀 간 숱한 사건은 주류 역사의 바닥을 까는 토대밖에 되지 못했다. 역사의 참과 거짓은 상대적일 수 있고, 간혹 시대의 정의를 호흡하며 절대적 가치를 등에 업고 우리 앞에 떠오른다. 여전히 우리 역사학계는 일제가 뿌린 식민사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사의 논에 뿌려 놓은 잡초가 더 무성해져 벼의 생육을 방해하고 어떤 때는 호흡을 끊을 기세로 덤벼든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역사의 허구성을 제대로 이해해야 역사 정립은 힘을 얻는다.

역사가 논점의 싸움장이라 해도 현재 정치판에서 펼쳐지는 금기어는 도를 넘는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고 바로 칼을 갖다 대는 사즉생의 각오가 넘친다. 여야는 다투면서 정권의 쟁취하거나 방어한다. 이런 쟁취의 구도에서 상대를 도울 일은 필요 없다. 하지만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판을 장악하는 바람에 옳고 그름의 게임은 지나갔다. 죽기를 각오하고 살 길만은 모색하는 형세다. 사선을 넘는 전쟁터에서 적을 향한 배려는 나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오직 사는 자만이 정의가 된다. 우리 현재 정치의 불행이다.

사법 리스크를 두고 여야의 극한 대립은 사법부의 결론이 날 때까지 계속될 게 뻔하다. 그동안 우리 정치는 공동화 현상을 지속할 것이다. 양보는 패배일 뿐인데 무슨 다른 여유가 있을 턱이 없다. 사법 리스크는 우리 국민을 더욱 곤고하게 내편 네편을 갈라 버렸다. 거짓으로 판명 난 사안을 두고도 진영에 따라 옳다고 믿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상식처럼 벌어지고 있다. 금기어를 금기하는 배려는 있을 수 없다. 사법부 쿠데타가 벌어지고 검찰 독재가 아직도 횡행하고 있다. 빨갱이가 색깔 빠진 나쁜 사람으로 읽혀도, 현 정권은 쿠데타 세력이고 독재 정권이라는 믿는 사람은 많다.

금기어 사용은 지지층 결속력을 강화한다. 자기 과신은 멋지고 확증 편향은 믿음이 된다. 의견이 다른 상대편을 인정하면서 적대시하지는 않아야 하는데 우리 정치판이 갈라놓은 골을 따라 상대를 적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뚜렷하게 나눠진 정치판에서 금기어로 전의를 불태우는 일은 다반사다. 금기어를 자꾸 불러대면 확신이 된다. 금기어가 넘쳐나면서 확증 편향에 힘을 더하면서 우리 정치는 끝 모를 어둠 속에 떨어진다. 요즘 사법 피의자가 독립투사와 같은 행세를 하는데도 열광하는 사람이 많다. 금기어를 상대에게 쏟아붓는 사람이 더 정의의 사도로 비치는 사태는 심각하다.

교통교통부가 이달 초부터 건설 현장 불법행위 신고센터를 운영했다. 2주 만에 843개 업체의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실제 피해 사례는 훨씬 많겠지만 노조 불법행위는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건설 현장에서 난무하는 불법은 자기 식구만 감싸고 상대는 죽이겠다는 행위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금품 갈취, 폭력 행사 등 불법 행사는 예사다. 건설 현장 불법 행위는 산업 경쟁력을 깡그리 쓸어버리고 국민 재산과 안전까지 말살한다. 노조원들이 공사 현장에 몰려와 자기 조합원을 고용을 협박한다. 이를 거부하면 건설사 대표는 적이 된다. 적을 타도하는 정당성을 얻는다. 이 또한 우리 사회의 크나큰 아이러니다. 노조들 또한 자기들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상대를 몰아넣는다. 정의에 반하는 금기어가 그들을 단일대오를 주축하는 힘이다.

상대를 배척하는 금기어가 힘을 얻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유령처럼 사람에 붙어 사람을 묶어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금지어로 제 힘을 얻으려는 사람은 사라져야 한다. 정치판에서 무시무시한 말을 교환하는 여야가 유령 사회를 만들고 있다. 유령은 허상이지만 속이 없는 사람에게 들어가서 힘을 쓰는 경우가 잦아 그게 문제다. `우리 편은 합리적이고 저들은 팩트로 무시한다`를 듣고 66%가 손을 드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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