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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본질 ⑨ 깨달음은 인식의 전환
존재의 본질 ⑨ 깨달음은 인식의 전환
  • 도명스님
  • 승인 2023.01.16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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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예전 TV에서 간장 광고에 히트를 쳤던 유명한 로고송이 있었다. "보고도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간장~". 이 로고송이 만들어진 흥미 있는 스토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전국 신도회장이었던 박완일 법사가 샘표 간장 창업자의 아들을 만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회사의 창립기념일에 초청을 받았던 박완일 법사가 대표이사인 창업자의 아들에게 회사의 경영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대표는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요즘 사람들이 옛날처럼 간장을 먹지 않아 잘 팔리지 않습니다. 이에 박 법사는 "그럼 광고라도 좀 하면 좋지 않겠나" 하니, "그럼 법사님께서 우리 간장 잘 팔리게 광고에 쓸 말 하나 지어 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창업자의 지인으로 그날 행사에 갔다가 회사의 대표에게 뜻밖의 부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즉석에서 `보고도 ~ 샘표간장`이라는 광고 문구를 생각해 내어 "이 문구로 광고를 만들어 보게" 하며 메모를 건네주었다. 대표는 이 문구를 바탕으로 광고를 만들게 했고 회사의 매출이 급등하였다고 한다.

박 법사는 판사 출신의 스님으로 유명한 효봉 큰스님의 제자로 일찍 출가했다. 출가 후 자신의 본질을 깨닫기 위해 경봉 큰스님, 전강 큰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 아래에서 치열하게 정진했다. 70년대 세상의 불합리와 중생들의 아픔을 함께하기 위해 민주화 운동에 가담했다가 수배당하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하산했다. 그러나 그는 하산 이후에도 엄격한 자기 수행과 전법에 헌신하여 조계종의 전국 신도회장을 맡을 정도로 명망을 얻었다. 스님의 출가를 다른 말로 입산(入山)이라 하고, 스님이 세속으로 돌아가면 하산(下山) 또는 속퇴(俗退)라고 한다. 절집에서는 속퇴한 이를 수행 도상에서 낙오한 것으로 여겨 `속환이`라 비하해 부른다. 그러나 원효대사나 부설거사처럼 하산하여도 세상에 큰 울림을 주었던 예에 비추어 하산한 모든 이를 수행의 탈락자로 낙인찍어선 안된다. 때문에 어떤 이에게는 속퇴가 아닌 속진(俗進)이란 말을 써도 과히 틀리진 않아 보인다. 이들처럼 박완일 법사도 젊은 시절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세속으로 나아가 한바탕 멋진 놀음을 하고 수년 전 본고향으로 돌아가셨다. 

불교에서는 삼보(三寶)라 하여 세 가지 보배가 있다. 불(佛), 법(法), 승(僧)을 말하는데 부처님과 진리 그리고 진리를 수행하는 스님들을 말한다. 여기에서 법이란 진리를 뜻한다. 이는 부처님이 깨달은 존재의 법칙인 연기법(緣起法)을 비롯해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변하지 않는 실체(아트만)는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가 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불교의 교리들이 있지만 이들 모든 교리는 `인연에 의해 생겨나고 인연에 의해 멸한다`는 연기법에 귀결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불교의 다양한 이론들 때문에 불교를 굉장히 관념적인 종교 또는 철학적인 종교만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교는 인생이라는 자신의 삶에서 누구나 직접 겪어야만 하는 생, 로, 병, 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생겨난 매우 실천적인 종교이다. 가르침의 핵심인 연기법은 붓다께서 이러한 생로병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어떤 선입관 없이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깨닫게 된 존재의 원리이다. 때문에 누군든지 치우침 없는 냉철한 지성과 존재의 본질을 알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만 있으면 진리를 깨우치는 것은 가능하다. 또한 그것은 논리와 철학이라는 도그마 속에 있지 않고 이미 드러난 모든 현상 속에 있기 때문에 법은 곧 지금 경험하는 이 순간 이 자리이며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이다. 법이란 곧 현상이며 이것을 언어 문자로는 진리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박완일 법사가 말한 `보고도 모르고, 들어서도 모르고, 간장 맛은 오직 먹어 보아야 안다`고 하였듯 진리는 이미 우리가 경험하는 삶 속에 있다. 하지만, 밖으로 특별한 것을 구하다 보니 못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새롭게 얻을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본질과 원리에 대한 올바른 앎이다. 조건의 완성이 아닌 인식의 전환이며 정신의 깨어남이다. 그러나 설령 이러한 이치를 모른다 해도 혀를 대면 맛을 아는 생명현상의 그 자리는 누구나가 평등하게 이미 갖추어져 있다. 글을 쓰는 지금 창밖에 겨울비가 내린다. 누군가에게는 반갑고 누군가에게는 반갑지 않을 수도 있다. 내리는 비에 대한 해석은 각자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비는 사람들의 기분과 바램에 관계없이 온도와 기압 그리고 모여진 구름의 양만큼 그냥 내릴 뿐이다. 이러한 진실은 승속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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