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6:28 (금)
수락석출
수락석출
  • 이광수
  • 승인 2023.01.15 2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강류유성 단안천척(江流有聲 斷岸千尺)/산고월소 수락석출(山高月小 水落石出)/증일월지기하이 강산불가복식의(曾日月之幾何而 江山不可復識矣)`- 강물 흘러가는 소리 아득히 들려오고/물 빠져 끊긴 강둑은 천 길이나 되는 구나/산은 우뚝 솟고 달은 기울었는데/강물이 빠지니 바위가 지상에 들어났구나/세월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강산이 빨리 바뀌어 알아볼 수가 없게 되었구나.이 시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인 소식 소동파(蘇東坡)가 지은 후적벽부(後赤壁賦)로 수락석출(水落石出)의 사자성어 출처이다. 직역하면 `물이 빠져 밑바닥의 돌이 들어난다.`는 뜻이다. 이 사자성어의 함의(含意)는 나중에 일이나 사건의 전말(진상)이 명명백백하게 들어난다는 것을 경계한 말로 인구에 널리 회자(膾炙)되고 있다. 소동파는 중국 송나라의 시인이자 정치가, 대학자로 그의 부친 소순, 동생 소철과 함께 당송팔대가로 이름을 날린 명문장가이다. 그가 지은 적벽부는 전적벽부와 후적벽부가 있다. 적벽(赤壁)은 삼국시대 초나라 유비와 오나라 손권의 8만 연합군이 초나라 조조의 100만 대군을 맞아 화공전으로 격파한 적벽대전(赤壁大戰)의 전쟁터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조조군을 백만 대군으로 묘사했는데 이는 소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인원수를 부풀린 것으로 실제 30만 정도였을 거라고 역사가들은 추측한다. 소동파가 옛 전쟁터였던 적벽의 아름다운 경치와 영웅호걸들이 활약한 역사를 떠올리며 지은 명시이다. 그가 이곳 황주 땅에 오게 된 사연은 기구하다. 송나라 신종 때 권력실세였던 왕안석의 급격한 개혁정책으로 민심이 동요하자, 구양수와 함께 강력하게 반대하다 변방인 황주 동파로 좌천돼 유배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시에서 노래한 적벽부의 적벽은 실제 적벽대전의 배경인 기어현의 적벽이 아닌 황주 땅 동파이다. 그가 기어현의 적벽에서 벌어졌던 적벽대전과 대비해서 적벽부란 시를 지은 것이다. 그는 유배지인 황주 동파에서 작은 초막을 짓고 자연을 벗 삼아 살면서 스스로 동파라고 칭하는 바람에 본명인 소식 보다 소동파로 더 유명해졌다.

이처럼 소동파의 적벽부에서 유래한 `수락석출`은 시간이 지나면 어떤 일이나 사건의 흑막이 걷히고 진상이 백일하에 들어나는 것을 비유하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결국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진실을 숨기려 해도 결국 언젠가는 그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는 말이다. 요즘 전 정부 고위인사들의 탈법혐의에 대한 검ㆍ경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잘잘못의 진상은 곧 밝혀지겠지만 옳고 그름은 정파적, 정략적 차원에서 추단되거나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있었다고 주장하는 측과 없었다고 부정하는 측의 진실여부는 공정한 수사를 통해서 그 진상이 밝혀져야 국민이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정직한 사회, 도의가 바로 선 사회는 거짓을 참이라 억지 부리는 몰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결국 도도히 흐르는 정의로운 민의(民意)앞에 무릎을 꿇고 말 것이다. 사필귀정이라고 옳고 그름은 국민의 냉정한 권력심판에 의해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모 기초지자체장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자신의 결벽을 주장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수사가 진행 중이라 사건의 결말은 알 수 없지만 그 자리가 뭐라고 목숨까지 담보했는지 참 안타깝다. 자산이 결벽하다면 법정에서 당당하게 명예회복을 위해 싸워야 하지 않겠는가. 죽음이 결코 자신의 결벽을 증명하는 방편이 될 수는 없다. 역사는 끊임없이 흘러 이미 반세기를 넘긴 잘못 재단된 과거사도 새로 규명해 바로 잡는 세상이 되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성철 스님의 법어(法語)처럼 이수차천(以手遮天),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아무리 은폐하려고 해도 언젠가는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다. 절차와 과정은 무시한 채 모로 가든 결과만 중시하는 승자독식의 사회풍조는 패자나 약자의 설 자리를 잃게 만든다. 오직 승리만이 지고지선(至高至善)인 경쟁사회는 페어플레이가 아닌 변칙과 탈법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난무한다. 성공과 실패의 희비상곡선이 교차하는 것이 인생여정이다. 실패가 있어야 성공이 있고 성공 뒤엔 실패도 따르기 마련이다.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것이 필부필부의 삶이다.

내년 4월10일 총선을 앞두고 중앙정가와 지방정가가 벌써 술렁대고 있다. 설을 맞아 거리에 내걸린 현수막을 보니 출사표를 던진 면면들이 낯설지가 않다. 과연 그들이 이 지역민을 위해 무슨 일을 어떻게 얼마나 했는지 묻고 싶다.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한 출사표인지,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면 도지는 불치병인지 이해 불가다. 수락석출의 함의(含意)를 되짚어 보며 심사숙고해야 망사(忘事)는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