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2:03 (토)
존재의 본질 ⑧ 말의 길이 끊어진 자리
존재의 본질 ⑧ 말의 길이 끊어진 자리
  • 도명스님
  • 승인 2023.01.09 2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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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 스님 산 사 정 담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 스님 산 사 정 담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세계 불교사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활발한 가르침을 펴는 종파 중 하나는 선종(禪宗)이다. 선의 역사는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전해오지만 깨달음으로 가는 독특한 가풍을 세워 제자를 가르친 이는 달마대사다. 그는 고대 인도 남부 향지국의 왕자 출신이라고 하며 전법의 인연이 있어 중국으로 와 선종의 초조(初祖)가 된다. 이후 선종은 발전을 거듭했고 이 땅에도 통일신라 시대 도의(道義) 국사(國師)를 통해 전해졌다. 현재 우리나라 불교계의 가장 큰 종단인 조계종뿐 아니라 태고종을 비롯한 많은 종단들이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선종 가풍이며 달마대사의 법통(法統)을 잇고 있다.

선(禪)의 본질은 수행을 통해 전제된 고정관념을 버리고 존재의 본질을 바로 보는데 그 묘미가 있다. 깨달음을 얻는 방식은 대개 지혜로운 스승과 미혹한 제자 간의 문답(問答)으로 스승이 제자의 무지를 없애는 식으로 전개된다. 이때 스승의 역할은 마치 거울과 같다. 그는 진리의 대화로 제자에게 자신의 무지를 보게 해 그것을 직접 극복하게 한다. 여기에서 스승처럼 제자도 깨닫게 되면 소위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된다. 흔히 세간에서 쓰는 이 말의 의미는 부부가 서로 마음이 통했을 때를 말한다. 그러나 원래는 스승과 제자가 함께 진리를 통했을 때 "마음으로서 마음을 전한다"라는 표현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선종에서 깨달음을 표현하는 문구가 있는데, 그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다. 풀이하면 "말의 길이 끊어지고 문자를 세우지 아니한다.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성품을 깨닫고 부처를 이룬다"는 뜻이다. 이 네 구절은 존재의 본질인 `지금 눈앞에 드러난 현상`을 깨닫는 가장 함축적인 말로 모든 현상의 특성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선가의 일화를 보면 제자가 간절하게 깨달음을 구하다 스승에게 "도가 무엇입니까?"하고 묻는다. 그때 스승은 "뜰앞의 잣나무니라"라며 초월적 언어로 답을 준다. 이러한 상황이 다소 황당한 동문서답을 하는 것 같지만 영민한 제자는 이 한마디에 마음의 본질을 깨닫는다. 또 "도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가까이 오너라" 하고선 스승이 머리를 한 대 쥐어박기도 한다. 제자가 "아야!"라고 하는 순간 "아프다고 하는 그 주인공이 누구냐?"라는 식으로 바깥으로 향한 제자의 시선을 다시 스스로에게 돌려준다. 이처럼 스승의 물음에 제자가 문득 보거나 듣거나 혹은 감각 할 때의 생생한 생명작용은 여섯 기관들이 대상과 인연 될 때만 일어난다. 그리고는 즉시 변하거나 사라진다. 때문에 보고 듣거나 느낀 것을 이후에 말하거나 문자로 표현할 때는 실제가 아닌 묘사일 뿐이다. 그래서 생명작용은 결코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용어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또한 글로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불립문자(不立文字)이다. 그리고 생명현상이란 시비(是非)나 호오(好惡)의 분별없이 바로 보이고 바로 들리는 순수한 인식상태임을 가리키는 단어가 직지인심(直指人心)이다. 또 이렇게 마음의 본질을 깨달아 욕심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을 모두 소멸하면 곧 견성성불(見性成佛)인 것이다.

한편,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광고 중에 `커피는 맥스웰, 크림은 프리마`가 있다. 그 광고를 많이 보기도 했고 시골 가게엔 그 제품밖에 없었기에 늘 커피를 살 때는 그냥 "맥스웰 주세요"라곤 했다. 뿐만 아니라 `커피크림`이라는 원래 제품과 `프리마`라는 상표의 구분이 잘 안되어 한동안 혼동이 있었다. 또한 택시를 말할 때도 `코로나`(코롤라)라고 했는데 한참 후 알고 보니 코롤나는 일본의 자동차 회사 도요타의 차종이었다. 이와 비근한 예로 트렌치코트를 말할 때 흔히 `버버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버버리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트렌치코트라는 옷의 상표일 뿐이지 코트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원 상품보다 브랜드의 가치가 커지면 브랜드 자체가 상품을 대신하기도 한다. 우리가 사실과 생각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할 때 역시, 제품과 브랜드를 구분 못 하는 소비자처럼 본질과 이미지의 혼선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항상 체험이 먼저이고 생각은 나중의 일이다. 이와 같이 사람이 먼저이고 돈이 나중이다. 그러나 본질과 방편이 뒤바뀌면 생각에 사람이 묶이고, 돈에 사람이 지배당하게 된다. 선종에서 말하는 네 가지 핵심 용어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자기 생각의 틀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잘 살피라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의 순간이란 매 순간 살아 숨 쉬면서 경험하는 `지금 여기`를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음을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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