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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의의 신서 소고
가의의 신서 소고
  • 이광수
  • 승인 2023.01.08 2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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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br>
이광수 소설가

가의(賈誼)는 중국 서한(西漢)시대의 정치가이자 사상가로서 그가 남긴 여러 저술과 상소문들은 후대에 <신서(新書)>라는 저작물로 전해지고 있다. 그에 관한 기록은 사마천이 편찬한 <사기> `사기열전`, `굴원 가생전`과 반고가 편찬한 <한서> `본전`에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있다. 가의는 어릴 때부터 총명해서 18세 무렵에 <시경>, <서경>을 암송했으며 시문(詩文)에도 능한 천재였다. 그 당시 하남군수였던 오공(吳公)은 그의 재주와 총명함을 총애하여 중앙정계에 진출했을 때 문제에게 주청하여 가의를 요직에 등용케 했다.

그때 가의는 이미 제자백가에 정통해 문제의 신임을 받아 박사(역사와 문헌전적의 편찬직)로 임명되었는데 불과 22세의 약관이었다. 문제재위 시는 한나라 초기라 무인들이 주축을 이루어 국사를 바로 펼칠 문사(文士) 등용이 절박한 시점이었다. 가의는 젊은 나이었지만 탁월한 식견과 격조 높은 논변으로 조정대신들을 압도했다. 입직 1년 만에 파격적으로 요직인 태중대부로 승진하여 진나라 때의 잘못된 법제와 폐단을 철폐하는 <과진론(過秦論)>을 주창했다. 진나라가 천하통일 후 단기간에 폐망한 원인을 평가하고, 국정혁신을 위한 개혁안을 문제에게 건의했다. 주 내용은 중앙에 포진한 제후들의 권세가 너무 비대해 그들을 제후국으로 돌려보내 세력을 약화시켜 중앙집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인 제후들의 반발과 모함으로 문제마저 가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자 변방 제후국인 장사왕의 태부로 좌천되고 말았다. 4년 뒤 문제가 죽고 막내아들 양왕이 황제로 등극하자 복권되었으나, 양왕이 낙마로 급서하자 이를 애도한 나머지 사직하고 표표히 길을 떠났다. 

가의는 초나라 충신 굴원이 빠져 죽었다는 상수에 이르자 자신의 불우한 운명을 굴원에 비유해 <조굴원부(弔屈原賦)>를 지어 그를 추모했다. 공손히 임금의 은혜를 받음이여/장사에서 죄를 기다리도다/듣자니 굴원은 멱라수에 몸을 던졌다 하네/흐르는 상수에 의지하여 삼가 선생을 애도 하도다/그 몸을 물에 던지셨으니 아! 원통함이여/만난 때가 좋지 못하였도다/난새와 봉황이 높이 날아오르도다/재주 없는 이들이 존중받고, 아첨꾼이 뜻을 얻도다/어진 이들은 뒤로 끌려가고/올바른 사람은 거꾸러지도다… 그만 두어라/온 나라가 나를 알아주지 않음이여/홀로 답답함을 누구에게 말하리오… 혼탁한 세상을 멀리 떠나 스스로 숨도다… 천 길을 날아오르는 봉황이여/덕의 광채를 보고 내려왔다가/덕 없이 험한 징조를 보고서 멀리 날개 짓하며 떠나가도다….

문제의 총애를 받던 가의가 변방으로 내쫓기는 신세가 된 것을 마치 초나라 굴원이 모함을 받아 팽당하자 억울함을 참지 못해 멱라수에 몸을 던져 자살한 것과 비유해 지은 자탄의 시이다. 가의는 세상을 비관하며 양왕의 죽음을 애도하다 가슴에 한을 품은 채 33세의 나이로 병들어 요절했다. 천재 현자의 안타까운 조락이었다.

후세 지식인들은 국가개혁의 큰 뜻을 품은 가의의 충정을 몰라 준 문제의 어리석음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제후들의 무능함을 질타했다. 사마천과 반고는 물론, 대유학자 유향(劉向)은 가의를 은나라 명신 아윤(伊尹)과 춘추시대 정치사상가 관중(管仲)과 같은 걸출한 인물로 높이 평가했다. 예나 지금이나 거시적 안목과 혜안으로 국정혁신을 도모하려는 현신과 충신들은 기득권수구세력들에 의해 토사구팽(兎死狗烹)당하기 일쑤였다. 국정을 책임진 맹한 리더들은 무엇이 국가백년대계를 위한 충정의 간언인지 간과하고, 오직 권력 유지와 파당을 위한 권력투쟁만 일삼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현상을 보면 가의 같은 현자가 왜 팽당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가의가 인생무상을 노래한 <복조부(服鳥賦:부엉이)>를 음미해보자. 천지가 용광로라면 조물주는 대장장이요/음양이 숯이라면 만물은 구리가 되도다/모이고 흩어지고 줄고 불어남에 무슨 정해진 법칙이 있겠는가/천변만화함이여, 애초에 끝이 없도다/… 통달한 대인이 크게 봄이여, 모든 사물에 걸림이 없도다/탐욕스런 자는 재물에 죽고/지조 높은 열사는 이름에 죽으며/으스대기 좋아하는 자는 권세에 죽는다/… 물결따라 흘러감이여, 물가에 닿으면 멈추리라/사사로이 내 것으로 삼지 않도다/삶은 떠 있는 듯, 죽음은 쉬는 듯, 깊은 못처럼 잠잠하고/메이지 않은 돛단배 같이 자유롭도다… 덕 있는 자는 메임이 없고, 천명을 알아서 근심하지 않도다/지푸라기 같은 자잘한 이들이여, 무엇을 의심하리오….
사직 후 세상을 비관하면서 지은 장시로 인생의 존재 의미를 성찰케 하는 철학적 의미가 함축되어있다. 비록 우리 인생은 백년지생(百年之生)에 불과하지만 올곧게 살다 간 선현들이 남긴 발자취를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인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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