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6:27 (금)
`바다의 은` 청어 이야기
`바다의 은` 청어 이야기
  • 김제홍
  • 승인 2023.01.04 2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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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홍 경남도 해양수산국장
김제홍 경남도 해양수산국장

1930년대 영국과 프랑스가 일본제국의 원유수송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말라카해협을 봉쇄해하려고 하자, 일본제국은 `동해에서 잡히는 청어에서 뽑아내는 청어기름 50만t/년 만으로도 유류난은 극복가능하다`고 큰소리친 적이 있다. 그러나 기름부족에 허덕이며 송진 채취한다고 우리나라의 아름드리 금강송만 죽어 나갔던 웃지 못할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청어가 가장 많이 잡힌 때가 바로 이 시기였다.

청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요한 먹거리가 되었다. 그래서 청어 보존 식품들의 흔적은 아직까지 전세계 식문화로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만 소개하면, 우리나라의 과메기와 청어알젓, 일본의 미카키 니싱, 스웨덴의 수르스트뢰밍, 영국의 블로터나 키퍼 등이다.

일본의 `미가키 니싱(身欠きにしん)`이란 말끔히 말린 청어라는 뜻인데, 과메기와 달리 내장을 모두 손질하여 훈연(燻煙) 처리하여 바싹 말리고 간장 양념을 한다. 물에 불려서 우려낸 국물과 같이 먹는다. 바다에서 먼 교토의 특산물인데, 마치 우리나라 경북 안동의 간고등어나 돈배기와 유사하게 보존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었다.

스웨덴의 `수르스트뢰밍(Surstromming)`은 `시큼한 청어`라는 뜻인데, 발트 해에서 잡은 청어를 두 달간 발효시킨 것이다. 우리나라의 홍어와 함께 세계 5대 악취요리 중 하나이다. 톡 쏘는 향부터 달걀 썩은 내, 버터향, 식초 냄새 등 온갖 냄새가 섞이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는 훈제 청어인 블로터(Bloater)가 유명하다. 이들은 청어의 내장을 제거하지 않은 채 소금을 뿌린 후 몇 주 동안 연기를 쏘여서 오래 보관했는데 그 냄새가 지독하다고 한다. 또 내장을 제거한 청어를 세로로 반으로 갈라 편 다음 소금을 뿌려 염장을 한 후 막대기에 눈을 꿰어 훈제한 것을 키퍼(Kipper)라고 한다.

청어는 유럽 국가들의 흥망을 좌지우지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대구와 함께 청어를 `바다의 은(The Silver Of The Sea)`라고 불렀다.

청어가 유럽경제를 흔든 것은 중세 기독교와 관련이 깊다. 중세 유럽의 기독교는 육류를 `뜨거운 고기`라며 엄격히 금했는데, 육류는 성욕을 일으켜 죄를 짓게 만든다는 황당한 믿음 때문이었다. 중세이후 유럽의 교회는 40일간 금욕과 참회하는 `사순절`을 비롯해서 일 년 중 거의 절반을 단식일로 정해 육류를 섭취하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는 육식을 엄격히 금지했던 금요일에 육식을 행할 경우 처형이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생선은 허락이 되었다. 생선은 `차가운 고기`로서 성욕을 억제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단식일의 피시 데이(fish day) 관습은 유럽에서 거대한 생선수요와 시장을 형성했다.

청어가 북유럽의 발트해를 산란장소로 했을 때, 발트해 연안의 도시 뤼벡(Lubeck)을 중심으로 90여 개의 도시가 연합한 무역동맹인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이 결성되어(13세기 중엽) 어업권과 나아가 유럽의 경제패권을 장악했다. 이들은 서쪽으로는 영국, 동쪽으로는 발트해까지 교역로를 독점하며 북유럽의 무역권을 지배했다. 비록 무역동맹이지만 14세기 말에는 자체적으로 군대를 보유하고, 그들의 무역 독점에 반대하는 왕국을 군사적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그런데, 15세기 초 기후변화로 이 청어들이 갑자기 회유경로를 북해로 바꿔버리자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약소국 네덜란드가 신흥강국으로 부상했고, 청어가 빠진 한자동맹은 쇠퇴했다. 스페인 몰락 후 네덜란드가 유럽의 패권을 거머쥔 것은 바로 청어때문이었다. 당시 네덜란드 국민의 1/5 정도가 청어관련 산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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