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4:50 (토)
시지즉지 시행즉행
시지즉지 시행즉행
  • 이광수
  • 승인 2023.01.01 2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주 만물의 자연법칙에 따라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시공간을 넘나들며 유행(流行)한다. 난세의 선천세상(先天世上)에서 이상적인 후천세상(後天世上)을 꿈꾼 난세의 사상가이자, 역학가인 야산(也山) 이달(李達)선생은 `하늘을 근본한 자 위로 친하고, 땅을 근본한 자 아래로 찬하며, 물은 적시며 흐르고 불은 마르며 위로 나아가니 아! 유유상종 대유(大有)한 세상이로다`고 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인간은 천지인(天地人)의 위대한 섭리를 결코 거역하며 살수 없는 존재임을 천명한 말이다. 동양철학의 으뜸인 역경(주역)은 우주 만물을 상대성원리에 따라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시간개념과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 공간개념으로 해석하고 있다. 주역은 이 세상 천지만물의 생성소멸과 소식영허, 흥망성쇠를 64괘 384효를 통해 논리정연하게 순서를 정해 나열하고 융합시켜 자연계와 인간계를 리(理)와 상(象)으로 해석한다. 상경(上經)30괘에서 하늘과 땅에 근본해서 물과 불로 자연세계를 해석하고, 하경(下經)34괘에서 함(咸, 청춘남녀의 느낌과 만남)과 항(恒, 부부의 항구함)에 근본해서 기제(旣濟, 이미 이룸)와 미제(未濟, 미결의 과제)로 인간세계를 해석한다. 이처럼 필자가 주역에 천착(穿鑿)하는 것은 3000여 년 전의 이 위대한 진리가 최첨단의 AI시대에도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그 맥을 이어받아 오늘 날 우리의 정신세계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세상 모든 일과 일상은 각종 전파매체를 통해 누구나 쉽게 난세(亂世)에 치세(治世)할 방법을 지득할 수가 있다. 그러나 강대함과 직진의 대장지도(大壯之道)에만 익숙한 나머지, 멈추고 물러남의 둔세지도(遁世之道)를 애써 외면함으로써 서로 반목하고 갈등한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다. 출세도 성공도 타이밍이 맞아야 빛을 보기마련이다. 멈추어야 할 때 멈추고,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함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면 그 인생여정은 실패한 삶으로 마감한다. 그러나 둔세지도의 실행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남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말이 있듯이 타이밍을 놓치면 말짱 헛수고이다.

야산선생의 양대 수학자 중 한분인 아산(亞山)김병호(金炳浩)선생은 일제 강점기 이래 영남을 대표하는 주역대가이다. 그는 <주역강의, 子 金珍圭 편저)>강론 하경 세 번째 괘 천산둔(天山遯)에서 `둔(遯)이란 피하고 물러나며 은둔함이니 시지즉지 시행즉행(時止則止 時行則行)`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군자(현명한자)는 모름지기 물러날 때에 맞춰서 물러나야 하고, 행해야 할 때에 맞춰서 행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소인배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물러남과 은둔의 여섯 가지 방법을 둔괘 6효로 이렇게 해설하고 있다. 첫째, 꼬리를 잡히지 않게 할 것이고, 둘째, 벗어나지 못함을 그만 두라는 것이고, 셋째, 은둔하지 못하면 소인을 훈육하라는 것이며, 넷째, 애호하는 취미로서 은둔하고, 다섯째, 가상할 이상으로 은둔하고, 여섯째, 심광체반(心廣體, 마음이 너그러우면 몸이 편안함)하게 은둔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물러남은 시간의 문제로 은둔의 타이밍을 놓치면 둔피(遁避, 물러나 피함)할 수 없게 되니 시간의 중요성을 간파해서 여시행야(與時行也,때에 맞추어 행함)함이니,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둔(遯, 물러남)을 결행해야 후회함이 없다는 뜻이다.

한국의 헌정70년사를 회고해보면 국권통수권자와 위정자들이 `시지즉지 시행즉행`을 지키지 않아 천고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에 흠집을 남기는 오류를 범한 채 유명을 달리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났으면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워싱턴 처럼 국부로 추앙받는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조국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한 박정희 대통령도 비록 군사 구테타로 집권했지만, 유신 없이 민주적으로 정권을 이양했더라면 선진한국의 경제기반을 닦은 존경받는 인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오명과는 달리 둔(遯, 물러남)의 심오한 역리를 간파한 이순신 장군은 역신의 오명으로 패망한 한나라 명장 한신의 전철을 밟지 않았다. 그는 임란 후 정유재란의 최후전쟁인 노량해전에서 패하여 도주하는 외적을 소탕하는 전장에 뛰어들어 죽음을 자처했다. 이는 자신의 임란공적에 대한 논공행상에서 선조가 보여준 졸렬한 처사를 보고(1등 선무공신책봉을 처음 반대함)그의 군자 됨이 부족함을 간파했다. 승전 후 토사구팽 당하는 욕된 삶을 살기보다 장렬한 죽음의 둔(遯)을 선택함으로써 조선의 왕권을 초월하는 위대한 구국의 성웅이 되었다. `시지즉지 시행즉행`은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의 실천론이자 군자지도(君子之道)가 아닐 수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