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0:44 (금)
`보금자리` 위협하는 `빌라왕` 들
`보금자리` 위협하는 `빌라왕` 들
  • 김중걸 기자
  • 승인 2022.12.28 2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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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걸 편집위원 <br>
김중걸 편집위원 

집 없는 설움은 여전하다, 폭설로 영하의 차가운 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불거진 `빌라왕` 얘기는 참으로 우리를 참담하게 한다. 엄동설한에 쫓겨나는 흥부의 절박한 심경이 떠오른다, 의식주(衣食住)로 일컫는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조건 중 하나인 집은 올겨울 유독(流毒)하다. 서울 쪽방,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물론 러-우 전쟁 여파로 에너지 사태를 맞고 있는 유럽은 추위와 전쟁 중이다. 미국도 최근 기록적인 눈 폭풍으로 일부 동부지역에서 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최근 빌라, 오피스텔 등 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숨진 일명 `빌라왕` 김씨의 전세 사기는 작금의 엄동설한과 맞물려 제집 없는 세입자들을 더욱 참담하게 한다. 민주당 박상혁 의원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받은 자료에 의하면 김씨와 관련한 전세 보증금반환 보증보함 사고 건수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171건이다. 김씨가 세운 법인 보유주택에서 91건, 김씨 명의 주택에서 80건의 보증 사고가 났다. 전세 기간이 만료됐는데도 집주인인 김씨가 보증금을 내주지 못해 HUG가 대위변제에 들어간 건수가 171건이다. 이 가운데 133건, 254억 원에 대해서는 HUG가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줬고 38건은 대위변제 진행 과정에서 김씨가 숨져 절차가 중단된 상태다. HUG 보증보험에 가입된 나머지 김씨 관련 세입자 440명은 아직 전세 기간이 만료되지 않았지만 보증 사고가 `예고`된 상태라고 한다.

`빌라왕` 김씨보다 더 큰 피해를 낸 불량 집주인들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HUG는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아 3번 이상 대신 갚아준 집주인 중 연력이 끊기거나 최근 1년간 보증 채무를 한 푼도 갚지 않은 사람을 `집중관리 다주택 채무자`로 분류ㆍ관리를 하고 있다. 이들 악성 임대인 중 가장 많은 임대 보증금을 떼어먹고 돌려주지 않는 사람은 박모 씨로 293건 계약에서 646억 원을 꿀꺽했다고 한다. 2위는 정모 씨로 254건 계약에서 세입자들에게 보증금 600억 원을, 3위 이모 씨는 581억 원(286건), 4위 김모 씨는 533억 원(228건)을 돌려주지 않았다. 5위는 440억 원의 보증금 사고를 낸 김모 씨였고 `빌라왕` 김씨는 악성 임대인 중 사고 금액만으로 따졌을 때 8위를 차지한다. 상위 30위 악성 임대인들이 낸 보증 사고 건수는 3630건, 금액은 7584억 원 규모였다. 이 중 6842억 원을 HUG가 대신 갚아줬다. 악성 임대인 보유주택 중 전세금 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주택까지 포함하면 피해 규모는 훨씬 커질 수 있다. 이들 악성 임대인이 보유한 주택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으로, 여기에 보증 사고 736건이 집중됐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157건), 인천 부평구 부평동(189건), 전남 광양시(131건)에서도 100건 이상의 악성 임대인 관련 보증사고가 터졌다고 한다.

`빌라왕`에게 전세금 사기를 당한 임차인들은 전전긍긍이다. 피해자들은 27일 세종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적극적인 피해 구제 대책을 요구했다. 피해자들은 "임대인 김씨 사망 후 국토부는 TF팀을 발족해 상황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며 `빌라왕 피해자 절반은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국토부 집계 결과 김씨 보유주택 세입자 중 HUG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614명(54%)이라고 한다. 보험에 가입한 피해자는 임대인이 사망했기 때문에 이행청구까지 상속 대의 등기를 발급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가 남아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HUG를 통해 대위변제를 받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보증보험 미가입자는 직접 경매를 통해 피해를 구제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가 남아 있다, 경매 개시에는 김씨의 상속자가 전원 상속 포기를 해야 해 경매에만 최소 1년 6개월에서 2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피해 임차인들이 처한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다. 김씨가 상가시설을 불법 증축한 근린시설을 주택으로 속인 사례와 등록임대사업자였던 김씨가 임대인 보증보험을 전세보증금 전액이 아닌 일부만 보증되는 상품으로 가입하는 등 다양한 피해사례가 드러났다. 악성 경제 사범에 대한 검찰의 신속하고 정확한 조사, 임차인 상대 악성 임대인 보유 주택 공지 의무화 법안 제정, 주택 매입 사전심의 강화, 피해자 전세자금 대출 연장 등 피해자들의 요구를 경청해 우리 사회에서 보금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비극을 막아야 한다. 경찰은 26일 전세 사기 의심거래들을 수사해 822명을 검거(360건)하고 이 중 78명을 구속했다. 어려운 시절 오손도손 모여 살던 `파친코` 소설 속 집이 새삼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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