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9:16 (금)
존재의 본질 ⑥ 진리를 막는 요인들
존재의 본질 ⑥ 진리를 막는 요인들
  • 도명스님
  • 승인 2022.12.26 2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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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br>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르네 마그리트는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다. 그의 예술 세계는 매우 독특하였고 다분히 철학적이기도 했다. 그는 많은 명작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작품이다. 그림은 커다란 파이프를 하나 그리고 아래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을 써 놓았다. 그런데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분명히 파이프를 그려 놓았는데 파이프가 아니라고 하니 혼란스럽기도 하고 작가의 의도가 자못 궁금했을 것이다. 
작가가 왜 그런 글을 써 놓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사실은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다분히 실존주의적인 그의 성향에 비추어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가늠해 볼 순 있다. 그는 사람들에게 실재하는 사실과 그것을 묘사한 이미지에 대한 무지를 깨우치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고 보여진다. 이미지로서의 파이프는 분명하지만 실제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실체는 아니다`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정원에 예쁜 장미꽃이 있는데,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가 매우 사실적으로 장미꽃을 그린다고 해도 그것은 장미꽃 이미지일 뿐이며 향기를 가져올 순 없다. 물론 정교한 사진을 찍어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뛰어난 화가나 사진사라 해도 생명 그 자체를 작품 속에 옮겨 놓을 수는 없는데, 생명이란 살아있는 것으로 이 자리를 벗어난 과거나 미래에 옮길 순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의식이란 창을 통해 보고 듣고 감촉하고 인지하는 경험 즉 생명현상을 일으킨다. 그러나 경험을 하고 난 후 생각을 바탕으로 언어나 문자, 영상 등으로 아무리 실감 나게 표현하더라도 그것은 실재가 아닌 묘사이다. 하지만 인간은 오랫동안 생존을 위해 생각을 자기의 가장 중요한 도구로 의지해 왔기에 생각에 대한 과신은 결국 사실과 묘사를 혼동하게 하곤 한다. 이러한 상황이 심해지면 주객이 뒤바뀌어 자신의 일부인 생각이 자신을 점령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인간이 생각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시하는 대로 삶이 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생생함으로 표현되는 `생명현상`이란 우리가 일상에서 늘 마주하고 있으며 존재의 본질을 깨우치는 핵심 요소다. 그것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는 다섯 가지의 직접 경험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존에 커다란 도움을 준 생각이란 도구는 언어와 문자라는 필터를 거치는 순간 변질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생각의 과도한 사용과 생존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일들에 대한 불안까지 불러오게 되었다. 상상은 유용한 것이지만 정도를 벗어난 과도한 상상은 망상이 되어 정신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나타난 현상을 통한 직접적 경험과 그것을 생각을 통해 이미지화하는 관념으로 구성되어 있다. 순수한 경험이, 있는 그대로를 보고 듣고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라면, 관념은 경험을 자기식으로 해석하거나 다른 이들의 생각을 받아들여서 쌓여진 생각의 덩어리들이다. 정작 문제는 일어난 현상이 아니라 현상을 해석하는 무지와 집착이라는 두 번째의 잘못된 생각에서 일어난다. 이처럼 사실과 생각에 대한 혼란이 진리를 가리는 첫 번째 요인이 된다. 
진리를 막는 두 번째 요인은 인문학적인 추상적 개념으로 거기에 접근하는 것이다. 진리는 사실을 이치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해석을 근간으로 가치를 도출하는 인문학의 영역이 아닌 인과를 위주로 한 자연과학의 영역이다. 예를 들어 여기에 사과가 하나 있다고 하자. 누군가 "이 사과의 맛이 어떠한가?"라고 물었을 때 이전에 자신이 먹었던 사과의 색깔과 모양이나 다른 사람이 먹었던 것을 기억하여 `달다` `시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사과를 먹기 전에는 결코 사과의 맛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사과의 진짜 맛은 혀가 사과를 감촉하였을 때에만 일어나는 `생명반응`이다. 그러나 맛을 상상하여 시로 쓰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객관이 아닌 인문학적인 주관에 속하며 사실이 아닌 관념이다.
또 하나는 진리는 특별하고 신성한 것이라는 선입견이다. 이는 우리의 삶 전체에 늘 경험하고 있는 다양한 사실들을 생각이라는 관념에 가려 놓치게 되는 경우이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고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이라고 한다. 범부의 삶은 지천에 있는 세 잎 클로버의 흔한 행복을 버리고 희소한 네 잎 클로버의 특별한 행복을 구하고 있는 것과 같다. 자연의 법칙은 모든 곳에서 진리를 드러내고 있지만, 인간의 바람은 인과를 초월한 성스러운 어떤 것을 구하는 생각 때문에 사실을 놓치고 환상을 쫓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나 생각에 매몰되어선 안 되며 때론 생각을 멈출 때 사실이 드러난다. 그때를 일러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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