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23:21 (목)
나라 밖을 내다보자 38
나라 밖을 내다보자 38
  • 박정기
  • 승인 2022.12.26 2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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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br>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공자의 현실주의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구절이 있다. 노자는 "원한을 덕으로 갚으라"고 하였다. 노자다운 말이다. 그런데 공자는 "악이나 원한을 은덕으로 갚으면 어떻겠습니까"라고 누가 묻자, 공자 왈, "그렇다면 착한 덕행은 무엇으로 갚겠단 말인가. 악이나 원한에는 바른 것으로 갚고, 덕행에는 은덕으로 갚아야지." 공자는 이런 말도 하였다.

"군자는 천하에 대해 무조건 꼭 그래야 할 것도 없으며, 절대로 안 된다는 것도 없다. 도리에 견주어 실행한다." 현실에 맞게 의(義)를 따를 뿐이란 말이다. 복잡다기(複雜多岐)한 세상일, 꼭 그래야 할 일도 없다? 공자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놀랄 일이다.

10여 년 전에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이란 하버드대 교수가 온 적이 있다. 그가 쓴 책 `정의란 무엇인가`는 한국에서 미국의 열 배가 넘는 200만 부 이상이 팔리고, 서울의 모대학 공개강연 때도 열기가 뜨거웠다는 유명교수다. 나는 강연장에 갈 수가 없어 CD를 사 보았다.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너무 놀라서. 명강의다. 황홀하다. 나는 세계적 유명교수를 접한 게 이때가 처음이다.

우리 세대는 전쟁 중에 공부했다. 교실이 없어 공장에서, 심지어 냇가에서도 수업했다. 우리 학생 시절은 가난에 전쟁까지 겹쳐 학습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샌델 같은 명교수를 어떻게 볼 수가 있었겠는가. 그의 명강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는 공리주의자 벤덤(Jeremy Bentham)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설명하면서 이런 예를 들었다. `철로를 달리던 기관사가 멀리 일하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5명이다. 그때 기관사는 깜짝 놀란다. 기관차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이다. 그대로 달리면 5명이 죽거나 다친다. 위기다. 그때 문득 옆 지선 쪽에도 일하는 사람이 보인다. 그런데 한 사람뿐이다. 그대로 달리면 5명이 결딴나고, 지선으로 빠지면 한 사람만 다친다.` 여기서 교수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기관사면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당연히 대다수 학생은 한 사람만 죽이는 선택을 한다. "그렇다면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옳은가?" 교수의 질문이다.

토론은 가열된다. 벤덤이 나오고, 자유주의자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이 나오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관까지 등장한다. 그러나 `이거다` 하고 똑 부러지게 정답은 낼 수가 없다. 어떤 논리도 현실적 문제에 명쾌한 답을 제시할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낸다. 결국 정의를 판단하는 세 가지 기준인 행복, 자유, 미덕을 모두 충족시키는 완전한 답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공자의 말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꼭 그래야 할 것도 없고 꼭 안 된다는 일도 없다. 도리에 견주어 실행한다." 얼마나 위대한 말인가! 그런데 샌델 교수의 강의실 현수막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그날 강의의 제목과 결론이다. `RIGHT AND WRONG` -it is not always black and white. 엄밀한 의미에서 세상사 현실 문제의 옳고 그름이란 꼭 이거다 저거다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내 짧은 공부의 속단인지 모르나 공자의 중용(中庸)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나온 게 아닐까?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이 떳떳하며,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그때 그 도리에 맞도록 대비하는 것이 중용(中庸)이라면, 중용이야말로 얽히고설킨 세상사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아닐까.

젊을 때 고전을 더 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너무 어려웠다. 병서(兵書)가 우리한테는 필요하니까 병서를 좀 더 보았다. 노자는 정말 모르겠다. 처음부터 골치 아프다. `도를 도라고 하는 것은 괜찮다. 그렇다고 언제나 도라고 할 필요는 없다. 도를 도라고 불러도 좋지만, 꼭 도라고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고, 두(頭)야! 노자의 `도덕경` 제1장이다. 너무 형이상학적이다. 무부(武夫, 군인)라선지 이해가 잘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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