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09:47 (금)
지루함의 경고
지루함의 경고
  • 허성원
  • 승인 2022.12.20 1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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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체 파 니엔테(Dolce Far Niente)`는 `달콤한 게으름`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이라는 뜻의 이태리 말이다. 미국의 이름난 와이너리의 브랜드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한 게으름`의 휴식을 상상해본다. 움직임은 최소로 줄이고 머릿속은 최대한 비우며, 오직 고요와 평화만이 함께 한다. 그 나른하고도 무료하면서 달콤한 행복이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듯하다.

오래전에 지인들과 발리로 휴가를 간 적이 있다. 우리 일행은 그 귀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알차게 보내려고 새벽부터 쉬지 않고 돌아다녔다. 그런데 같은 리조트에 묵고 있는 서양 투숙객들은 우리와 달리 너무도 게으르고 여유로웠다. 풀장의 비치파라솔에 드러누워 책을 읽거나 졸다가, 가끔 일어나 물에 들어가는 정도의 밋밋하고 심심한 휴가를 보내는 것이다. 우리가 종일 나무를 바쁘게 오르내리는 원숭이와 같다면, 그들은 사냥으로 배를 채우고 나서 그늘 아래에서 졸며 쉬는 사자와 같은 종족으로 여겨졌다. 그들의 휴가는 돌체 파 니엔테에 가까워 보였다. 나도 그런 휴가를 꿈꾸고 있다.

그런 휴가처럼 스스로 느긋이 즐기는 적극적인 게으름은 필시 달콤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뜻에 반하여 소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30분, 1시간, 혹은 하루 정도는 가능할까. 이를 버지니아대와 하버드대의 심리학자들이 실험하였다. 피실험자들에게 휴대폰이나 책 등을 일체 주지 않고, 홀로 빈방에서 일정 시간 의자에 앉아 아무 생각이든 하게 하였다. 이 쉽고도 단순한 실험에서, 피실험자들은 누구도 그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했다. 방해가 전혀 없는데도 자신만의 생각에 집중하지 못했다. 낯선 환경 탓이라 여겨, 각자의 집으로 옮겨 실험을 진행하여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놀라운 결과는 그 후속 실험에서 나왔다. 홀로 있는 것을 싫어한다면, 그 싫어함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알기 위해, 피실험자들이 싫어하는 전기충격을 준비하였다. 사전에 물어보았을 때 피실험자들은 그것을 피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들 말했다. 그런데 막상 15분의 고독한 시간이 주어지자, 피실험자 중 남자들은 2/3가 4번 이상의 전기충격 버튼을 스스로 눌렀다. 무려 190번이나 누른 사람도 있었다. 여성들은 1/4만이 버튼을 눌렀다.

혼자 가만히 생각하기만 하면 되는 그 단순한 일이 싫어서, 돈을 내고서라도 피하고 싶은 전기충격을 스스로에게 수차례 가하였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 연구 결과는,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기보다는 부단히 무언가를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본능적 욕구가 있음을 확인해준다. 스마트폰이나 소셜미디어 등과 같은 데서 쉬지 않고 자극을 찾아 헤매는 현대인의 삶도 그 본능에 기인하는 듯하다. 그리고, 여성보다는 남성들이 가만히 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자극을 더 추구하는 것이다. 이를 보면 남자들이 황당한 사고를 많이 저지르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나저나, 우리는 왜 아무 일 없이 가만히 있으면 지루함이나 무료함을 느끼며, 그것을 참지 못할까? 지루함이나 무료함이라는 감정은, 불안이나 공포 등의 감정처럼,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유전인자에 정착된 본능이 아닐까. 지루함 등은 만족과 안락이 지속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 편안함의 지속이 무언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우리 본능은 지루함이라는 경고를 생성하여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 같다. 그냥 그대로 가만있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 인식, 혹은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본능의 요구일 것이다. 아니면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더 효율적으로 가동하여 좀 더 의미와 가치가 있는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내적 욕구일 수도 있다.

그래서 지루함은 변화를 촉구하는 트리거가 된다. 바로 변화의 시작인 셈이다. 지루함은 우리의 내부에 잠재된 창의력의 빗장을 풀어 변화의 길이나 해결책을 창조하게 한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창의적으로 찾아낸 길을 따라 주도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행동과 주의력을 통제하는 외부의 힘을 과감히 물리치는 일이다. 역사상 많은 위대한 창조나 성취는 그런 과정을 거쳤다. 지루함과 그 경고를 자유로이 통제하며 활용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진정한 `돌체 파 니엔테`를 누리는 경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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