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본질 ⑤ 깨달음은 멀리 있지 않다
존재의 본질 ⑤ 깨달음은 멀리 있지 않다
  • 도명스님
  • 승인 2022.12.19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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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br>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우리가 가끔 쓰는 말 중 `이판사판`이란 용어가 있다, 이는 누군가 어떤 문제에 봉착하여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온몸을 던질 때 쓰는 말로 절집에서 나왔다. 보통 막다른 골목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을 때 "좋다. 한 번 해보자"라는 정면 도전의 뜻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원래는 수행자가 자신의 진로를 선택할 때 `이판`이 될 것인지, `사판`이 될 것인지 명확하게 하라는 의미에서 시작되었다.

이판(理判)이란 선원에서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 수행하는 스님을 말하고 사판(事判)이란 수행하는 스님들을 지원하고 사찰 살림을 꾸려가며 행정을 보는 스님을 말한다. 보통 이판승은 선방이나 토굴 같은 수행장소에서 규칙적인 시간을 정해 놓고 참선을 한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기간을 `안거`라 하는데, 3개월간의 여름 안거(夏安居)와 겨울 안거(冬安居)가 있다. 참선 시간은 기본 8시간에서 많게는 16시간까지 각 선방의 가풍에 따라 다르다. 공주에 있는 학림사 오등선원처럼 3개월간 방바닥에 눕지 않고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참선할 수 있도록 한 곳도 있었다.

사실 이 정도의 용맹정진을 하려면 거의 자신의 전 존재를 걸어야 될 것도 같은데 무엇 때문에 이들은 이처럼 치열하게 사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나는 누구인지`, `존재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가족과 세상을 등지고 출가해 자기 존재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일념으로 진리를 깨닫기 위해 면벽한다. 

그럼 이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찾고자 하는 진리란 무엇이고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진리(眞理)란 참다운 이치이고 깨달음이란 나를 비롯한 존재의 본질을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란 단순하고 구체적이다. 그것은 우주의 존재 원리를 자연과학적인 시각에서 보고 있으며, 붓다는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생겨나고 인연 따라 소멸한다`는 연기(緣起)의 법칙이라고 설파했다. 또한 그 이치를 바르게 알 때 비로소 진리를 깨달았다 말한다. 

물론 나란 존재도 인연에 의해 생겨나서 변하며 소멸한다는 원리를 벗어나 있지 않다. 이렇듯 나를 비롯한 모든 존재들이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을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한다. 무상이란 변화를 뜻하며 긍정과 부정을 벗어나 우주가 존재하는 그대로의 원리를 말하고 있다. 

요즘은 천체물리학의 발달로 우주의 탄생과 변화에 대해 많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양자역학의 발전으로 인해 미립자, 소립자의 세계까지도 규명되고 있다. 물질의 최소 단위가 분자, 원자, 전자, 쿼크에서 이제는 신의 입자라는 힉스까지 규명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절대성을 가진 물질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과학 기술의 발달로 물질의 최소 단위인 `힉스`조차 절대적인 정체성을 가진 물질이 아니라 순간순간 변화하는 물질들의 일시적 조합임이 밝혀졌다. 이처럼 극미 세계는 미립자라는 인연들의 조합에 의해 동물과 식물, 광물 등으로 다양한 모습을 만들어 간다. 

또한 극미 세계의 법칙이 그대로 극대 세계까지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데 절대적인 실체는 없으나 상대적인 조건에 의해 모든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를 불교에서는 제법무아(諸法無我), 즉 `모든 현상에 변하지 않는 실체는 없다`. 고로 나란 존재도 불변의 정체성이 없고, 인연과 조건에 의해 생겨난 존재라고 본다. 나의 몸, 이름, 소유, 성격, 습관 심지어는 성별까지 절대성을 부여할 수 없다. 

최근 전직 미국 군인이었다가 성을 전환해 여성으로 살아온 크리스틴 벡은 이제 다시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할 예정이라 한다. 또한 러시아인 스프리도노프는 머리만 정상이고 나머지 몸은 기능을 못 하는 중증 장애인이다. 그는 머리만 남기고 목 아래의 신체 전부를 이식하는 수술을 하려고 했는데, 만약 성공했다면 이를 누구라고 해야 할까? 이처럼 생겨난 모든 것은 인연과 조건에 의한 일시적 화합으로 작용하고 활동할 뿐 영원한 실체는 있을 수 없다. `죄`와 `복`조차도 영원하지 않으며 지은 대로 받고 나면 끝내 소멸하고 만다. 인간이 나라고 여기는 몸과 마음 그리고 의식도 결국 생겨난 것이니 영원성을 부여할 수 없다. 

깨달음의 내용은 단순하다. 그것은 일어난 현상에 대한 인과관계를 있는 그대로 명확히 아는 것일 뿐이다. 외부의 자연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처럼 인간도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변화 또한 누구나 겪게 되는 사실이다. 그리고 일어나 온갖 현상에 대한 해석은 자유지만 일어난 모든 현상은 에누리 없는 인과의 결과임을 인식하면 된다.

이러한 진리의 모습은 지금 여기와 자신을 떠나 있지 않으니 먼저 자신의 발밑부터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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