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하게 꿈꾸는 아름다운 사회는 진짜 우리 곁에 올까?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은 분명 우리 눈앞에 펼쳐질 턱은 없다. 많은 사람이 만들어가는 사회라는 게 온갖 생각이 얽히고 설켜 어데로 흐를지 종잡을 수 없는 데다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에 날뛰는 구성원을 구슬리기가 힘들다.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고독사로 3400명이 숨졌다. 아무도 그 사람의 죽음을 모르고,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채 어스푸레 빛조차 들어오지 않은 곳에서 숨을 거뒀다. 이 또한 얼마나 큰 아이러니를 품은 우리의 삶인가. 더불어 관계를 맺고 사는 게 사회인데, 이 사회에서 떨어져 혼자 저세상으로 간다. 우리 사회가 야속하다. 사회가 개인을 배신한 것인지 개인이 사회를 배신한 것인지.
사회에 소망을 품는 자체가 모순이다. `나는 사회에서, 더 나아가 국가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면 많은 사람은 존재의 그림자가 깃털처럼 흔들리는 걸 감지한다. 좋고 이상적인 사회는 없다. 국가도 한 개인을 제대로 품을 수 없다. 인간이 만든 썩 괜찮은 조직인 사회가 인간을 품지 못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가르침은 이제 더 있는 교과서에서조차 이해의 길에서 벗어나 있다. `나는 자연인이다`고 외치는 TV 화면을 보고 눈에서 광기를 빛나는 사람은 위험하다고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세상을 등지고 산으로 향하는 길을 넓힐지 모른다.
행여 인간 창조물 가운데 인공지능(AI)이 인간 통제를 벗어나 우리 사회를 점령해 인간의 사회성이 파괴된 걸 보고 인간 사회의 주인공으로 등장할지 누가 알겠는가. 인간이 나서 차차 죽어가면서 고립과 뒹굴다가 혼자서 스르르 스러지는 모습은 참담함의 극치다. 경남에서는 5년 동안 1081명이 홀로 죽었다. 고독사가 늘어나는 이유는 1인 가구 증가가 큰 몫을 한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3.4%를 차지하고 이 비율 또한 하늘로 치솟으면 고독한 죽음은 우리 사회의 지독한 모습으로 확대될 것이다.
학업과 취업 스트레스와 실직이 주는 중압감으로 30대 아래로 청년 고독사도 만만찮다. 우리 사회의 뼈아픈 부분이다. 푸른 청년이 혼자서 삶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어두운 곳에서 웅크리고 있다 삶의 끝을 맺는다는 생각을 하면 우리 사회의 아득한 끝을 보는 듯하다. 이 가운데 절반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스스로 목숨을 내팽개치고 아득한 낭떠러지 추락하는 청춘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것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살기 위해 일을 하거나 일하기 위해 살거나 매한가지다. 개인 삶을 떠받치는 우리 사회의 허약한 디딤돌과 무너져내린 울타리를 보면 삶의 길을 말하기를 곤란하다. 개인주의가 넘쳐나도 기본적으로 공동체 의식을 도도하게 사회 저변에 흘러야 한다. 삶의 빈틈을 메울 복지정책이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 사회가 최소한 고독사가 증가하는 힘을 세울 수 있는 더 강력한 반대의 힘이 필요하다. 숱한 사람이 "살면 뭐해"라며 어둠으로 삶을 몰고가는 현상이 팽배하는 이유를 개인에서 찾기보다 사회에서 찾는 게 더 이성적이다.
누가 우리 사회를 특정 그룹만을 위해 펼쳐 놓았단 말이다. 누가 일부만 떵떵거리고 활보하면서 생활하도록 디자인했는가. 주검 옆에 컵라면이 뒹굴고 세금 독촉장이 방바닥에 깔려 있다는 사실은 어떤 부조리 문학보다 강하다. 죽음보다 강한 생명의 흩어짐이다. 실직과 이혼을 하는 중장년은 사회와 단절하기도 한다. 입조차 굳게 닫고 마음의 빗장을 걸고 자신을 가두는 창살을 쓰는 자학은 복지가 편만하게 펼쳐지는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는 방증이다.
고독사를 원초적인 인간의 고독감에서 찾는 철학자들도 있다. 성경적인 바탕을 깔고 이야기를 풀면 인간은 본향을 잃은 존재다. 나면서 갖는 본향 상실은 고독을 멍에처럼 쓰는 유한한 존재의 숙명이다. 우울증이 그토록 지독할 수 있는 이유도 본향의 상실감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이유도 큰 몫이지만 이웃 상실도 또 다른 큰 몫이다. 이웃이 없는 우리는 고독의 옷을 입는 일조차 자연스럽다. 고독의 옷에 경제적 망치가 머리를 때리면 삶은 거추장스러운 거죽이 된다.
자연스러운 죽음은 축복이다. 삶의 완성이 죽음으로 의미를 더한다. 삶의 끝을 환영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고독사는 저주를 품고 떠나는 마무리다. 우리 사회가 고독사를 줄이는 방법에 손을 잡아야 한다. 먼저 이웃이 살아나야 하고 사회를 촘촘히 연결하는 작은 모임들이 활성화돼야 한다. 고독한 길로 걷는 사람의 손을 잡는 우리 사회가 생명력을 다해 움직여야 한다. 말 한마디 건네면 고독사가 멈춘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국가는 고독사를 단순한 레퀴엠으로 들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