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9:41 (토)
나라 밖을 내다보자 36
나라 밖을 내다보자 36
  • 박정기
  • 승인 2022.12.15 1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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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br>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기원전 5세기, 인간은 철기를 발명한다. 철기로 만든 무기는 청동기나 석기 무기에 비교가 안 되는 살상력과 파괴력을 발휘하여 전쟁을 더욱 잔혹하게 만들었다. 철기 농기구는 청동기 농기구보다 농업 생산량을 서너 배나 증가시켰다. 철기로 사냥을 하니, 풍부한 단백질의 공급이 가능해져 인간의 지능이 발달하였다. 잉여 농산물이 생기자 소인들의 재산이 불어나면서 피지배계급인 소인과 농민들의 신분이 상승하였다. 사회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권력관계에 갈등이 생기고 위계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천자와 제후 사이도 제후의 세력이 커지면서, 동주 시대가 되면 천자는 소멸한다. 본래 혈연으로 질서를 유지하였던 것인데 몇백 년 세월이 흐르면서 혈연관계도 애매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70여 제후국은 약육강식의 무자비한 싸움을 시작하였다. 전국시대 말기에는 위, 제, 연, 진, 한, 초, 조 7개 제후국만이 남았다. 소위 `전국 7웅`이다. 천자도 사라지고, 하늘의 뜻이란 것도 자연현상의 하나일 뿐, 하늘에 대한 경외감, 믿음도 약화하였다. 인간은 자각심이 생겼다. 자기를 발견한 것이다. 인간의 문제도 신에게 의탁할 게 아니라 인간 스스로 결정하고 개척해야 한다는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하늘을 대신할 도가 나오고, 이를 선도할 공자, 노자가 안 나올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신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신화의 세계에서 철학의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제자백가(諸子百家)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으로 얼룩진 혼란하고 잔혹한 시대였다. 수많은 영웅호걸이 싸우며 부침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그 혼란의 극한 와중에도 수많은 학자와 다양한 철학자가 치열한 경쟁 백가쟁명(百家箏鳴)을 벌여 인류 역사상 유례를 볼 수 없는 학문의 꽃을 피웠다. 인간이 자각하면서 일어난 일들이다.

백가쟁명은 중국이 세계 어디에 내어놓아도 가슴을 펴고 자랑할 수 있는 위대한 사건이다. 제자백가가 없었으면 실례지만 중국은 별 볼 일 없는 나라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옛날, 300년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벌인 지적(知的) 대 논쟁은 세계 어느 민족도 흉내 내지 못할 세계인의 유산이요, 영원히 빛날 위대한 금자탑이다. 그 논쟁 가운데는 다양한 정치사상과 주장, 날카로운 비판과 변론은 때로는 우레와 같은, 때로는 무지개와 같은 화려하고 웅장한 지혜의 꽃을 피웠다. 뿐만이 아니라 삶의 지표를 제시하는 고도한 윤리체계,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철학사상, 죽고 죽이는 전쟁에서조차 싸우지 말고 이기라는 심오한 병학(兵學) 등 21세기를 사는 우리도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내가 좋아하는 글귀다. 남자의 일생을 이 몇 마디에 다 담았다. 누가 한 말이냐 `대학(大學)`에 있단다. 대학? 대학이 무언데? 사서오경(四書五經)이 뭔데? 사서오경도 나는 잘 몰랐다. 그런데 `수신제가…`는 어디서 들었다. 남자의 일생이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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