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국 고거역학자(考據易學者)는 역학사료의 정리와 고증에 주력하는 학자들로 청대의 박학역학자들이다. 그들은 건가(乾嘉)고거학풍을 계승하고 신사학인 의고파(擬古派)의 역향을 많이 받았다. 문헌고거역학자로는 이경지, 고형, 문일파, 굴만리 등이 있고, 고고역학자로는 장정량, 우호량, 엄영봉, 이학근 등이 대표적이다. 이경지(李鏡池)는 <주역탐원>ㆍ<주역통의>를 저술했다. 그는 전기 작인 <주역탐원>에서 역이 복서임을 증명하여 `역은 복서(卜筮)에서 성립되어 복서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논증했다. 그는 주역은 주나라의 점서로서 문왕의 괘사는 역과 아무 관련이 없었으나 후인들이 그 관련성을 추론했으며, 효의 구(九)와 육(六)의 명칭은 뒤에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현재의 괘효사는 첫째, 정조(貞兆)의 사(辭)로서 점복을 단정한 문서이고, 둘째, 서사의 사로서 고사(古辭)이고, 셋째, 상점(象占)의 사로서 시사(示辭)라고 했다. 괘명은 본래 괘획만 있었지, 괘명은 없었으며 괘효사 중에 자주 쓰이는 글자를 취하여 괘효사 해석에서 이름을 형용사, 동사, 명사, 부사를 사용해 표시했다고 했다. 그는 <역전:십익>은 결코 공자의 저작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후기 작인<주역통의>에서는 자기주장을 일부 수정해 주역의 본질에 관한 전기의 관점을 부분 수정해 괘명이 괘효사 해석내용과 관계가 있음을 인정했다.
고형(高亨)은 고사변파 역학사상가의 영향을 많이 받아 훈고에 능한 역학자였다. <주역고경통설>ㆍ<주역고경금주>ㆍ<주역잡론>ㆍ<주역대전>을 저술해 중국대륙과 대만에서 영향력이 큰 고사학파 역학자이다. 그의 주역에 대한 본질파악관점은 통행본인 <역전>의 관점과는 크게 다르다. 괘효사를 갑골문자의 복사(卜辭)와 같은 부류로 보아 주역의 괘상과 괘효사, 괘사와 효사, 괘와 괘 사이에는 필연적인 논리관계가 없다고 보고 <역전:십익>은 이경지와 마찬가지로 공자의 저작물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따라서 건괘의 원형이정(元亨利貞)해석도 통행본의 `크게 형통하여 바르게 함이 이롭다`가 아닌 `크게 형통하여 그 점이 이롭다.`로 해석했다. 국내 고사학파 역학자인 김상섭은 고형의 이론에 동조해 <역전>과 <역경>의 관계를 이전역경(以傳易經)이 아닌 이경역경(以經易經)으로 해석하면서도, 이전역경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관점에서 해석방법만 다를 뿐이라고 했다. 즉, 주역은 공자의 <십익>으로도 해석할 수 있고, 고거에 의한 고증학적 방법론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