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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건강ㆍ긴장 줄 `주민소환제`
정치 건강ㆍ긴장 줄 `주민소환제`
  • 김중걸 기자
  • 승인 2022.12.07 2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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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걸 편집위원
김중걸 편집위원

유명무실하던 `주민소환제`가 15년 만에 소환을 위한 문턱을 대폭 낮추는 것으로 개정되고 있다. 국회 행안위가 지난 1일 주민소환 투표 청구인 수와 투표율 기준 완화를 골자로 하는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새 `주민소환제`에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그동안 주민소환제는 투표 청구 문턱이 높아 유명무실하다. 청구인 수가 비현실적으로 많고 절차도 까다로워 월권 등 문제가 많은 단체장이나 의원 등을 소환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국회 행안위가 주민소환을 위한 청구인 수를 낮추고 투표율 기준도 유권자의 `1/3 이상`에서 `1/4 이상`으로 낮췄다. 또 전자서명을 이용해 투표 청구를 위한 서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문자메시지 전송, 인터넷 사이트 게시 등을 통한 서명 요청 활동도 가능하게 했다. 주민소환 투표권자의 나이도 19세에서 18세로 하향 조정했다. 주민소환 투표의 장벽을 모두 걷어 냈다고 볼 수 있다.

현행 주민소환법에 따르면 주민소환 투표 청구 서명인 수는 시ㆍ도지사의 경우 투표 유권자의 `10% 이상`이다.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은 `15% 이상`이며 지방의회 의원은 `20% 이상`이다. 인구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청구요건을 획일적으로 규정해 인구가 많은 자치단체일수록 요건을 충족하기가 어려워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에 개정안은 지자체의 유권자 수에 따라 구간을 설정해 청구요건을 차등 규정했다. 유권자 수를 5만 이하, 5만 초과~10만, 10만 초과~50만, 50만 초과~100만, 100만 초과~500만, 500만 명 초과 등 6개 구간으로 나눠 청구인 수 기준을 달리했다.

대체로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요건이 완화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유권자 5만 명 이하의 서명인 수는 `유권자 수의 15% 이상`이며 `5만 초과 10만 이하`(7500+유권자 수 중 5만을 넘는 수의 13%), `10만 초과~50만`(1만 4000+유권자 중 10만을 넘는 수의 11%), 50만 초과~100만(5만 8000유권자 수 중 50만을 넘는 수의 9%), 100만 초과~500만(10만 3000+유권자 수 중 100만을 넘는 수의 7%), 500만 초과(38만 3000+유권자 수 중 500만을 넘는 수의 5%)로 각기 정했다. 개표 요건인 투표율 기준도 유권자의 `1/3에서 `1/4`로 낮아졌다. 다만 투표자의 수가 유권자의 1/3에 미달할 경우 `유권자 1/6 이상 찬성`을 조건으로 달았다고 한다. `유효투표 과반수의 찬성`이라는 주민소환 확정 조건은 그대로 뒀다.

이번 주민소환제가 획기적으로 개정되자 홍준표 경남도지사 주민소환투표 사례가 소환되고 있다. 2016년 9월 경남도선관위는 당시 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가 투표 청구요건인 27만 1032명(2015년 말 기준 경남 유권자 10%)에 8395명 부족하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당시 무상급식 중단, 진주의료원 폐원 등 각종 정책 결정과 추진 과정에서 홍 지사의 권력 남용과 독단을 지적하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주민소환 운동이 추진됐다. 그러나 주민소환 투표 청구인 수 부족으로 투표는 성사되지 못했다. 홍 전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 당시 경남 유권자 수가 270만 명이라면 개정안에 따른 기준 서명인 수는 `10만 3000명+170만의 7%`로 계산해 22만 2000명이 돼 이 기준을 적용하면 투표를 할 수 있다.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당시 주민소환제가 이번 개정안과 같았다면 지자체 단체장의 권력 남용과 독단은 함부로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고대 그리스 `도편추방제`를 기원으로 하는 주민소환제는 배우 아놀드 슈와제네거가 미국 역사상 2번째 주민소환 사례로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됐다. 작금의 정치는 안하무인 격이다. 막말, 편가르기, 권력남용 등 잘못을 해도 책임지는 정치인이 없는 시대다. 과도한 권력을 주민이 견제할 수 있는 주민소환제는 말 그대로 우리 정치와 사회를 지키는 안전장치이다. 주민소환이 정치적으로 활용ㆍ악용되면 안된다. 개정안은 지난 2020년 말 정부가 제출한 법안과 여러 여야 의원이 발의한 법안 등 5건을 통합ㆍ조정해 마련한 대안이다. 여야가 이견이 없어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까지 통과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지자체장과 의원들은 국민을 무서워하고 부정에 긴장ㆍ경계하는 공직 척도로 삼기를 바란다. 2007년 이후 지난해 말까지 진행된 주민소환 투표 126건 중 11건만 투표가 실시되고, 나머지 115건은 서명자 부족이나 철회 등으로 투표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제 문턱이 낮아진 만큼 정치인도 몸가짐을 더 조심하고 주민도 임무수행 태만, 의무 불이행, 직권남용 등 요건에 맞는 주민소환이 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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