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4:29 (금)
존재의 본질 ③ 생각과 사실의 차이점
존재의 본질 ③ 생각과 사실의 차이점
  • 도명스님
  • 승인 2022.12.05 2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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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br>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월드컵으로 인해 전 세계의 축구 팬들이 열광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포르투갈을 이기고 16강에 진출해 전 국민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월드컵 시즌이 되면 가까운 지인들끼리 경기를 앞두고 우승국이 누구인지, 또 우리나라의 성적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두고 내기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내기의 묘미를 느끼는 순간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자신의 예측이 적중했을 때의 짜릿함과 이길 확률이 낮은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이변이 일어났을 때이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역시 이변이 일어났는데 강호들이 즐비한 조에 편성된 우리나라와 일본은 16강 진출한 반면, 축구 강국 독일이 16강에 연속 탈락했고 세계랭킹 2위 벨기에도 역시 고배를 마셨다. 대부분의 축구 전문가나, 독일과 벨기에의 국민들은 자국이 16강에 진출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격적인 일이 지금 그들의 눈앞에 일어났다. 사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취합해 통합적인 예측을 하더라도 완전한 예측은 있을 수 없고 이변은 일어난다. 왜냐하면 각 팀과 선수 개개인 모두에 대한 정보와 경기 당일 일어날 수 있는 변수를 사전에 전부 알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은 둥글다"고 한 것처럼 경기 전에는 100% 이긴다는 확률이란 없기에 약자도 희망을 가질 수 있고 강자도 절대 안심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과연 경기 전의 예측과 경기 후의 결과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경기 전의 내기가 각 팀의 경기력과 전술, 그리고 선수의 능력에 대해 종합적으로 예측하는 생각이라면 경기의 결과는 현실에서 일어난 현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경기 전의 확률과 경기 후의 사실이라는 `생각과 현상`으로 구별되는 것이다. 생각을 바탕으로 한 예측이 확률의 영역이라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일어난 현상은 모든 조건들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객관적인 실체이다. 그래서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이길 팀은 반드시 이기고 질 팀은 반드시 진다. 그것은 나의 바람과 무관하게 오류나 여지없이 정확하게 일어난다. 

이처럼 모든 현상은 이전에 형성된 인연과 조건에 의해 일어나서 변하며 소멸해간다는 우주의 법칙을 따를 뿐이다. 때가 되면 해가 뜨고 해가 지듯 조건이 무르익으면 지진과 해일 가뭄과 홍수 등의 온갖 자연재해도 발생한다. 현상 그 자체는 선악과 시비조차 없고 인연과 조건이라는 평등의 법칙에 따라 무심(無心)하게 일어난다. 자연의 법칙은 `인연과 조건만 되면 일어날 뿐`이라는 말 그대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따라서 이상 기후, 이상 현상은 자연계 자체에서는 실존할 수 없는 단어이다. 따라서 모든 현상에는 이변이 없다. 다만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변일 뿐이다. 

이처럼 이변이란 단어는 항상 특정한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근거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눈다. 그러나 지구의 환경 변화 자체로 보면 지구가 뜨거워졌든 차가워졌든 자연의 섭리에 맞게 존재해 왔을 뿐 본래 그 기준이 없다. 마찬가지로 자연과 함께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기쁜 일과 슬픈 일이란 현상도 각자의 인연과 조건에 의해 정확히 발생하니 그 자체로 보면 잘못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외부의 사회현상이든 내부적인 개인사이든 일어난 현상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과에 의해 정확하게 일어난 현상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여도 문제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빨리 수용하고 문제의 본질을 찾아 지혜롭게 대처해야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을 것이다.

축구를 잘하는 독일과 벨기에가 진 것 자체에 잘못된 것은 없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16강에 진출한 것은 우연이나 횡재수로 보일 수도 있지만 당연히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현상의 이면에 숨겨진 다양한 조건들을 사전에 알 수만 있다면 경기의 결과는 전혀 이변이 아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어져 왔던 습관적인 생각인 관념에 의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기에 이변으로 보일 뿐이다. 

독자들께서 이 기사를 접할 쯤엔 브라질과 승부는 이미 났을 것이다. 브라질 사람은 "아들은 낳으면 축구 선수를 만들고 딸을 낳으면 축구 선수에게 시집 보낸다"라고 할 정도로 축구란 그들에겐 거의 종교 수준이다. 축구에 대한 전통은 브라질에게 안 되지만 열정은 그들 못지않은 뜨거운 심장을 가진 민족이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제는 K-팝, K-무비뿐 아니라 K-축구도 세계만방에 그 진가를 드날릴 것으로 기대된다. 이변처럼 보이더라도 우리가 브라질을 이겼으면 좋겠다. 그럴 자격은 이미 충분하다. 하지만 지더라도 최선을 다해 박수받을 수 있는 멋진 패자가 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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