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22:23 (토)
지인논세
지인논세
  • 이광수
  • 승인 2022.12.04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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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지인논세(知人論世)란 `사람을 알고 시대(세상)를 논한다`는 말로 인재를 제대로 알아볼 줄 알아야 현명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함의(含意)를 내포하고 있다. <맹자(孟子)> `만장(萬章)` 하편에 `지인논세하려면 시대를 뛰어넘어 과거의 인물과 그들이 남긴 책을 읽어 보라`고 했다. 맹자는 제자 만장에게 `한 고을의 좋은 인재가 다른 고을의 좋은 인재를 벗 삼고, 한나라의 좋은 인재가 다른 좋은 인재를 벗 삼으며, 천하의 좋은 인재는 다른 좋은 인재를 벗 삼는다. 천하의 좋은 인재를 벗 삼아도 오히려 부족하다면 위로 옛 사람을 논의해야 하니 그 사람의 시와 책을 읽으면서 그들을 모른다고 하면 되겠는가. 그러므로 한 시대를 논한다는 것은 그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벗을 사귀는 것이다`고 했다. 지인논세(知人論世)의 탄생 근원이다.

지인논세를 언급하면 으레 인구에 회자되는 것이 관포지교(管鮑之交)이다. 관중과 포숙의 공사 구분에 관한 스토리는 인사의 전범(典範)이 될 만한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 천하가 대 혼란을 거듭하던 춘추시대의 큰 정치가였던 관중은 절친 포숙의 한없는 양보와 배려 덕분에 제나라의 재상이 되어 40여 년간 재임했다. 관포지교는 두 사람의 돈독한 우의뿐만 아니라 위대한 팔로워 십(Follow Ship)이 한나라를 어떻게 부강하게 만드는 가에 대한 역사적 사례이다. 관중이 40여 년간 재상자리에 병든 몸으로 있으면서도 포숙을 후임으로 천거하지 않았다. 이에 소인배들이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했지만 관중은 <관자(管子)> `임법(任法)`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해서 사사로운 정으로 상을 내려서는 안 되며, 누군가를 미워한다고 해서 사사로운 원한으로 벌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는 사사로운 애정과 시혜가 증오와 원한의 빌미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한 말이다. 특히 위정자가 사사로운 인연에 얽매여 공정심을 유지하지 못하면 나랏일을 그르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전 정부나 현 정부나 인사의 공정성 문제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국민의 지탄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여론조사기관의 공식여론조사에서 현 정부의 지지율이 30%대를 맴도는 원인 중 상위권을 차지하는 항목이 바로 불공정한 인사문제이다. 내편 아니면 못 믿겠다는 상대 정치세력에 대한 불신감은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탕탕평평 인사운용의 부재현상은 중앙정부나 지자체나 마찬가지다. 필자 역시 오랜 공직생활을 통해서 절감한 일이지만 직무처리 능력이나 자질보다 자신에게 얼마나 충성하느냐가 인사의 바로미터였다. 더 높은 지위상승을 위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개진하면 적으로 간주해 토사구팽하는 일이 허다했다. 자신의 입세를 위한 전시행정창안이나 학맥, 인맥과의 친소여부로 용인(用人)하는 불합리한 인사는 여전하다. 

맹자는 `마음을 감독하는 것이 생각이다. 따라서 생각하면 얻을 수 있지만 생각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생각 없는 논리와 행동의 위험성을 경계하는 말이다. 리더가 생각이 부족하고 우일신하는 배움이 없으면 세상을 이끌어가는 현명한 지혜의 샘은 고갈되고 만다. 아첨하는 간사한 무리들의 사탕발림 공치사에 일희일비 의탁하면 정사를 그르치기 마련이다. 예로부터 `재상의 뱃속은 큰 배를 담고도 남아야 한다.`고했다. 사람을 담는 생각의 그릇이 커야 한다는 뜻이다. 조막손 같이 작은 배포로 내편 아니면 적으로 내모는 지도자는 존경받는 리더로서는 함양 미달이다. 비록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국민과 도.시민들에게 사자후를 토해봤자 마이동풍이요 우이독경일 뿐이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는 90여 명의 제왕과 200여 명의 제후 및 수많은 참모들이 등장한다. 사마천이 지난 역사 속에서 이상적인 리더로 손꼽은 인물 중 한 무제 때 명장 이광(李廣)이 있다. 그는 청렴하여 전쟁승리로 상을 받으면 군사들에게 나눠주고 음식도 군사들과 함께했다. 죽을 때까지 40여 년 넘게 2000석 녹봉을 받는 장수였지만 남은 재물은 남루한 집 한 채뿐 거의 없었다고 한다. 후에 간사한 젊은 간신들의 농간으로 박해를 받게 되자 치욕을 참지 못해 자결했다. 청렴이 오히려 욕된 삶이 되고 자신을 희생해 힘든 일에 앞장서서 제 몸보다 아낀 부하들에게 배신당했지만, 역사가 사마천은 그를 한나라의 충성스러운 명장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왕조시기에 나라에 큰 재앙이 들면 모든 게 임금인 자신의 부덕한 소치로 여기고 천지신명께 제를 올리며 근신했다. 그러나 지금 불의의 큰 재난을 당한 시국에도 도의적으로 책임질 위치에 있는 위인들이 후안무치로 버티며 정치싸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으니 유구무언이다. `지인논세`는 바로 지금 우리가 처한 정치적 상황에서 리더가 어떻게 사람을 알고 세상을 논해야 할지를 적시하는 명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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