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20:54 (목)
"우리 선수 마지막까지 최선 다하면 16강 희망 쏠 수 있다"
"우리 선수 마지막까지 최선 다하면 16강 희망 쏠 수 있다"
  • 이정민 기자
  • 승인 2022.11.28 1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로 이 사람
월드컵 첫 골 주인공 박창선 씨

김해합성초서 축구 시작
1977년 포철 입단 후 활약
김해FC 법인화 등 변화 예고
축구 생태계 단단해져야
1986년 멕시코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월드컵 본선 첫 골의 주인공이었던 김해 출신 박창선 씨.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마라도나(왼쪽)와 기념사진을 찍은 박창선 선수.
1986년 멕시코월드컵 출전 국가대표 팀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월드컵의 시간이 돌아왔다. 4년마다 열리는 전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이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시작됐다. 카타르는 천성이 친절한 아랍 민족으로 국토 면적은 우리나라 경기도만 하다. 한국은 `2002 한일월드컵`에서 유럽의 강호 폴란드, 포르투갈, 이탈리아를 차례로 격파해 4강 신화의 저력을 보인 이래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토고(아프리카)를 상대로 원정 첫 승을 얻었으며,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는 원정 첫 16강을 달성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물리쳐 `카잔의 기적`을 연출하기도 했다. 

월드컵에서 지금까지 득점을 맛본 태극전사는 모두 23명이다. 김해 출신 박창선은 1986년 멕시코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중거리 슛을 작렬시키며 한국 축구사에 새장을 썼다. 월드컵 본선 첫 골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요즘 근황은 어떤가.
"U소년 지도도 하고 축구계 인사들도 만나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월드컵 시즌이라 찾는

고객들이 많다.(웃음)"
월드컵 최초 골을 넣었다. 그때 소감은.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우리나라는 사상 첫 출전했던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헝가리에게 9대 0으로 대패했다. 월드컵 사상 최다 득점 패다. 당시 헝가리는 지금의 브라질만큼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전쟁 직후라 비행기 표조차 구하기가 힘들어 우리 팀은 일본ㆍ태국ㆍ인도ㆍ이탈리아를 거쳐 경기 이틀 전에야 겨우 개최국 스위스에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미어지는 장면이다. 그 이후로도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단 1골도 넣지 못했다. 그때는 월드컵 1승이 아니라 골이라도 넣어보는 게 숙원이었다."

그때 같이 뛴 선수들이 누군가.
"차범근, 조영증, 허정무, 조광래 선수들이 함께 운동했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나.
"그렇다. 축구에 재질이 있었다. 김해합성초등학교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김해중학교에 다녔지만 축구부가 없었다. 사관학교 꿈을 꾸고 부산 배정고에 1년을 다니다가 동아고로 전학했다. 동아고에 축구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고에서 큰 활약을 했다고 들었다.
"내가 간 해에 한 해 전국대회에서 세 차례나 우승했다. 전국대회 규모의 시합에서 한 번 우승하는 것도 힘든데 한 해에만 세 번을 우승했으니 학교는 물론 부산 체육계가 떠들썩했다. 그때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경희대에 체육특기생으로 진학하게 됐다. 경희대에서도 1년에 3번씩 우승한 경험이 있다. 은퇴 이후 1992년 모교인 동아고에서 첫 지도자 생활을 시작으로 1998년 대한민국 U-20 대표팀의 감독을 맡았고, 1994년부터 모교인 경희대에서 감독으로 10년간 지휘했다."

프로팀에서도 뛰지 않았나.
"1977년 포항제철팀에 입단했다. 군 복무 중에는 육군 충의 축구단(1978∼1980)에서도 뛰었다. 1983년 프로축구리그가 창설되자 할렐루야 독수리 창단 멤버가 됐다. 대우 로얄즈 (1984∼1986), 유공 코끼리(1987) 등에서 활약했다. 그때는 프로와 실업팀이 함께 겨루는 슈퍼리그 제도가 있었다. 대우 로얄즈 시절 리그 MVP로 선정된 적도 있다. 포철에서 뛸 때 박태준 회장님이 선수들에게 많은 배려를 해 주셨다."2024년 전국체전을 앞두고 있다.
"다른 체육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전국체전은 체육인들에게 큰 잔치이자 좋은 기회다. 선수들은 남은 기간 동안 더욱 기량을 닦고 개인의 영광과 함께 지역의 명예도 빛내줬으면 한다. 특히 우리 지역에서 열리기 때문에 지역 선수들은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해 더 큰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지역으로서도 이를 기점으로 체육 기반시설도 늘리고 체육활동이 지역 주민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스포츠 마케팅도 어우러지면 금상첨화다."

스포츠 마케팅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김해지역은 전국에서 기후가 가장 좋은 편에 속한다. 인근 남해만 하더라도 다양한 스포츠 시설을 갖춰놓고 겨울철 전지훈련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김해는 국제 규격에 맞는 운동장조차 변변치 못한 실정이다. 스포츠 파크를 조성해 국내외 경기를 유치하면 스포츠 발전은 물론 지역 경제에도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경기가 없는 기간에는 지역민들의 주민 건강과 레저 시설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김해 축구 현황은 어떤가.
"곧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김해FC가 법인으로 전환될 예정으로 알고 있다. 법인화는 곧 자력 생존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흘린 땀보다 더 많은 땀과 노력을 요구할 것이다. 보통 축구계는 U소년부터 중등부ㆍ고등부ㆍ실업팀 혹은 프로로 이어지는 생태계로 이어진다. 우리 지역은 이런 생태계가 좀 더 단단해질 필요가 있다."

태극전사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낸다면.
"한국 축구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강한 뒷심이다. 한국 축구가 기록한 34골 중 무려 28골이 후반에 나왔다. 지난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도 우리가 넣은 3골은 모두 후반 정규시간 막판과 후반 추가시간에 나왔다. 모든 상대가 벅차고 강한 팀이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선수를 살펴보면 박창선을 필두로 김종부ㆍ최순호ㆍ허정무ㆍ황보관ㆍ홍명보ㆍ서정원ㆍ황선홍ㆍ하석주ㆍ유상철ㆍ안정환ㆍ박지성ㆍ이천수ㆍ이을용ㆍ송종국ㆍ설기현ㆍ이정수ㆍ이청용ㆍ박주영ㆍ이근호ㆍ손흥민ㆍ구자철ㆍ김영권으로 이어진다. 박지성ㆍ안정환ㆍ손흥민은 공동 최다 득점자로 각각 3골씩을 기록했다. 박지성은 포르투갈(2002), 프랑스(2006), 그리스(2010)를 상대로 한국 축구사상 최초의 3회 연속 본선 득점을 올린 선수로 기록돼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