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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본질 ② 생명의 가치는 평등하다
존재의 본질 ② 생명의 가치는 평등하다
  • 도명스님
  • 승인 2022.11.28 1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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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br>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종교에서 마음을 경건히 하여 절대자나 성스러운 존재 또는 천지신명께 소원을 비는 행위를 기도라고 한다. 그리고 사찰에서 스님이 부처님과 여러 신들에게 불자들의 소원이 성취되도록 기원해주는 행위를 축원(祝願)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축원은 부처님에 대한 찬탄을 시작으로 남북통일과 세계평화를 염원한다. 그리고 코로나 종식, 이태원 참사 영혼들의 극락왕생 등 현안에 대한 기도로 진행된다.

이어 살아 있는 사람의 소원을 비는 생축(生祝)과 조상님 등 죽은 사람이 평안하기를 빌어주는 망축(亡祝)을 한다. 필자는 이러한 기본적인 축원에 몇 가지를 추가하고 있다. 그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과 2016년부터 계속해오는 6.25 한국전쟁 당시 사망했지만 유구를 수습하지 못한 한국군ㆍ유엔군 영혼들과 북한군ㆍ중국군 영혼들의 극락왕생이다. 

사실 한국전쟁 당시 아군이 아닌 적군인 북한군ㆍ중국군을 축원하는 데에는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파주에 있는 북한군과 중국군 묘지인 `북중군묘지`를 십수 년 전부터 관리해온 묵계 서상욱 선생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그는 오래전 파주 땅에 살다가 우연한 기회에 그 묘역을 알게 되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꽃다운 청춘에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전장에서 죽은 이름 없는 북한군과 국가의 명령으로 타국에서 불귀의 객이 된 중국군 영혼들의 애타는 호소로 인해 그 묘역을 찾게 되었다고 했다. 

처음 그가 북중군묘지를 찾았을 땐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썩어가는 300여 기의 묘지목과 풀만 무성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의 뜻과 노력을 알아본 권철현 전 주일대사와 9시 뉴스를 진행했던 엄기영 아나운서가 합류하면서 국가 지원으로 묘역을 깨끗하게 정비할 수 있었다. 이후 그들은 해마다 날을 정해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재사를 모셨다. 

필자도 어느 해 요청을 받고 묘역에서 기도를 하게 되었다. 이미 잘 단장된 묘역이었지만 그곳에서 기도를 하다 보니 스무 살 전후의 어린 나이에 강대국의 정치 이데올로기와 개인의 정권욕으로 인해 전쟁의 희생양이 된 그들이 너무나 가엾게 여겨졌다. 그래서 절에서 일상적으로 하는 축원에서도 그들을 위한 마음까지 담았다. 처음에는 이러한 모습을 지켜본 신도들이 적군의 영혼들을 위해 기도한다며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위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르면서 한을 품고 죽어간 불쌍한 영혼들의 입장에 대해 말하니 자연스럽게 이해해 주었다. 

모든 생명은 본래 존엄하다. 그러나 동일한 전장에서 죽었는데, 승리한 쪽은 유공자로 인정받고 패배한 쪽은 이름조차 없는 무명용사로 취급당한다. 과연 영혼도 국가와 계급의 차별을 받아야 할까. 지금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이다. 당사국과 주변국의 입장은 다르다 할지라도 생명의 본질적 차원에서 보면 어느 나라 군인의 목숨의 무게가 더 무겁다고 단언할 순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의 흔적을 찾기 힘든 우주 공간에서 생명이 탄생한 것은 기적이기 때문이다.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만들어진 것이 특별한 사건이라면 유기물에서 생명이 나타나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살아 숨 쉬고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해 내는 생명체의 탄생은 우주적 사건이다. 또한 보고 듣고 아는 인지작용과 희로애락의 온갖 감정을 표현하는 인간이란 존재는 우주의 법칙이 만들어낸 걸작품이다. 물론 인간 기준에서 보면 인간의 생명이 가장 존엄하겠지만 생명이라는 우주적 희소성과 생명 스스로의 존엄을 보자면 모든 생명은 똑같은 무게를 가진다. 

붓다가 말한 불살생이나 비폭력이 단순히 인간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모든 생명체에게 통용된다는 것은 이처럼 고귀한 생명의 가치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붓다가 말한 불성(佛性)이란 완성된 존재인 성자의 생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물을 포함해 모든 생명체가 본래 가지고 있는 생명의 본바탕을 말한다. 또한 모든 존재들에게는 인과의 법칙이라는 자연의 평등한 존재 원리가 적용된다. 때문에 생명을 해치는 것은 가장 무거운 업을 짓게 되는 것이다. 

생명의 본질이라는 차원에서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대의명분뿐 아니라 선악의 개념조차 없다. 그저 인과라는 평등하고도 냉엄한 우주적 질서만이 존재한다. 우주에서 보면 모든 생명은 그 존재 자체가 유일하다. 특별히 큰 업적을 만들지 않아도 생명의 차원에서는 있는 그대로 존귀하다. 그래서 옛 도인들이 도란 "배고프면 물 마시고 졸리면 잠잔다". 그리고 신통이란 "나무하고 물긷는 일이다"라고 말했던 까닭이다. 이는 일상에 경험하는 평범한 일들조차 넓은 시각에서 보면, 예사롭지 않은 것임을 새롭게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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