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4:47 (토)
나라 밖을 내다보자 32
나라 밖을 내다보자 32
  • 박정기
  • 승인 2022.11.28 1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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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br>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1941년까지 중국군은 일본군과 밀고 밀리며 많은 사람이 죽었다. 싸움은 주로 장제스가 했다. 마오쩌둥은 일본을 핑계로 어부지리를 챙겼다. 전쟁보다 시민, 노동자, 농민들을 상대로 민심 잡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국공합작을 했으면서도 심심하면 국민당과 홍군은 싸웠다. 가볍게 싸우는 게 아니라 사생결단하고 싸웠다.

이념의 차이란 무섭다. 특히 공산당의 집요한 세력 확장은 곳곳에서 충돌을 일으켰다. 1940년 이후 공산당도 상당한 기반을 잡아 중국 대륙은 이제 크게 세 개 지역으로 분할된다.

즉 충칭을 중심으로 하는 중화민국 직할 지역, 옌안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당의 섬강녕변구, 도시와 해안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군 점령지역이다.

1941년 후반부터 중일전쟁의 성격이 바뀐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했기 때문이다. 겁도 없이 미국에다 대고 한 방 먹였다. 한 방치곤 대형사고다.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완전히 결딴냈으니. 일본은 건국 이래 최대 실수를 저질렀다. 일본이 망할 것은 뻔한데 그런 사고를 낸다. 누가 봐도 대미전쟁은 망국의 길이다. 일본만 그걸 모른다. 모르는 게 아니라 일본 사정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사람들은 그길로 가게 되어 있다. 매우 교훈적이다. 우리 지식인들은 일본의 쇼와사, 특히 쇼와 말기 역사를 한 번은 읽어야 한다.

미국은 그동안 중일전쟁에 대해 사실상 팔짱을 끼고 있었다. 중국이 일본군을 묶어 두는 것만도 고마웠다. 모르긴 해도 일본이 진주만까지 치고 오리라곤 꿈에도 생각 안 했을 것이다. 일본은 선전 포고도 없었다. 미국이 격노할 것은 뻔한 일. "Remember Pearl Habor"전 국민이 들고일어났다.

미국의 앞마당에까지 불똥이 떨어지자 미국 조야에서는 전쟁처리는 물론, 전후 동아시아 전체의 경영까지 포함해서 진지한 검토를 시작했다. 후술하지만 이때 계산을 잘못했다. 전략적 미스다. 이때의 오산이 동아시아의 판도를 바꾸고, 우리 한반도와 배달의 처지를 어렵게 한다.

국제정세에 밝은 장제스도 발 빠르게 소위 구축국(일본, 독일, 이탈리아)에 선전 포고를 한다. 또 직속부대를 미얀마 전선으로 파견하여 영국군과 합동작전까지 펴게 한다.

이때부터 중일전쟁은 2차 대전 일부로서 세계의 인정을 받게 되고, 그동안 홀로 일본과 싸워온 중국의 공로도 재평가받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2차 대전의 시작은 1939년 9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부터가 아니라, 37년 7월 일본의 중국 침략이 시작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하였다.

실제로 중국의 장제스는 진주만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혼자 힘으로 일본과 싸웠다. 일본의 80만 명의 육군병력을 중국에 4년 동안이나 묶어 놓았다. 우방 동맹국들이 장제스에게 이만저만 덕을 본 게 아니다.

그러나 중국이 치른 대가는 혹독하였다. 중국인 2000만 명이 희생되고, 8000만 명의 난민이 고향을 잃고, 국가기반시설의 80%가 파괴되었다. 큰 도시는 모두 폐허가 되었다. 한편 중국 공산당은 장제스가 일본과 싸우는 동안 농민의 지지기반을 공고히 다져갔다. 과감한 사회개혁 정책으로 중국인들의 인심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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