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4:02 (목)
팔고문과 팔고취사제
팔고문과 팔고취사제
  • 이광수
  • 승인 2022.11.27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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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 수<br>소설가<br>
이 광 수
소설가

팔고문(八股文)은 중국 명ㆍ청 시대 500년간 시행된 과거시험 문체형식을 말한다. 중국사서인 대학ㆍ중용ㆍ논어ㆍ맹자의 내용을 "성현의 말씀대로"라는 식으로 그대로 옮겨서 답안지를 작성토록 국가가 엄격하게 규정한 과거시험제도이다. 이 틀과 형식을 벗어난 답안을 제출하면 대과급제는 물 건너갔다. 과거급제를 원하는 지식인들을 사상적으로 옭아매는 족쇄로 악용된 문장 중의 변종이자 재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중국 명ㆍ청 500년간 지식인의 사상과 정신을 속박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세월을 낭비하게 한 최악의 인재등용제도였다. 팔고취사제(八股取士制)로 불리는 이 제도는 고시낭인을 양산케 함으로써 관리로 입신출세를 원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망치게 한 악폐 중의 악폐였다. 팔고취사제는 진시황제가 분서갱유로 지식인의 자유로운 사상표현을 탄압하고, 한나라 무제가 사상통제를 위해 유교경전 중심의 경의문(經義文)만 용인함으로써 학문적 자유를 억압한 문자옥(文字獄)과 다름없었다. 아마 기 폐지된 사법고시나 현재 시행 중인 5급 공채시험도 팔고문의 틀에 박힌 공리공론의 답습은 아닌지 의구심을 감출 수 없다. 고위관료가 갖춰야 할 인격적 덕목과 실질적인 직무능력을 검정할 수 있는 시험제도 여부의 합리적 판단을 유보한다는 뜻이다.

팔고문의 구조는 서론과 본론으로 나눌 수 있다. 서론에는 파제(破題), 승제(承題), 기강(起講) 등이 포함된다. 주로 재목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는 부분으로 제목 자체가 내포하는 사상적 내용을 설명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이끌어 낸다. 본론은 재목이 뜻하는 의미에 근거해 관련 유가사상을 밝히고 자신의 인식을 드러내야 하며, 반드시 대구(對句)형식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기이고(起二股), 중이고(中二股), 후이고(後二股), 속이고(束二股)라는 팔고(八股)의 틀에 박힌 형식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 파제는 제목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으로 반드시 주자가 주(注)를 단<사서집주>의 주석과 한 치의 벗어남이 없이 일치해야 한다. 응시자의 마음대로 해석하여 답안지를 작성하면 무조건 낙방이다. 답안지 작성 때 이 부분 내용을 살려야 하며 제목이 뜻하는 의미를 잘못 해석하면 바로 제목을 욕하는 불충이 되어 용납되지 않는다. 파제의 길이는 두 구절이지만 문장의 성패가 달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승제는 파제를 이어받는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네댓 구절로 제목의 의미를 한 단계 더 나아가 설명하고, 설명한 제목의 의미에 근거해 문장에 담긴 주지(主旨)를 밝힌다. 기강은 파제와 승제 다음으로 소강(小講)이라고도 하며, 그 주요 내용은 제목의 의미를 가일층 드러내는 것이다. 기강 첫머리에 2음절 단어인 차부(且夫), 상위(嘗謂), 약왈(若曰), 상사(嘗思)를 3~5구절 쓴다. 파제, 승제, 기강이 제목에 담긴 의미설명이라면, 입제(入題)는 과도적 언급 부분으로 입수(入手), 영제(領題), 낙제(落題), 영상(領上)이라고도 한다. 입제작법은 제목에 선행구절이 있는 경우 그 앞 구절을 받아 본론으로 들어가야 한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바로 팔고문의 본론으로 들어가 구체적으로 쓰는 분고(分股)가 된다. 분고 내용은 반드시 대구형식으로 써야 하는데 기이고, 중이고, 후이고, 속이고가 팔고문형식이다. 기이고는 초고, 초비, 제비라 하며, 각 고는 4~5구, 8~9구로 이뤄진다. 중이고와 후이고는 통상 제목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중요 부분이다. 속이고는 앞의 여섯 고에서 논지(論旨)를 다 들어내지 못한 부분을 마무리하는 과정이다. 2~3구 또는 3~4구를 쓴다. 수결(결어, 낙하)은 명대에는 대개 문장 끝에 대결(大結) 또는 결어로 한두 구절 글로 전체를 마무리한다. 팔고문은 각 부분 간에 내재적 연관성이 있어야 하고, 글 전체 논리가 명확해 기승전합(起承轉合)을 이뤄야 한다. 이처럼 지식인을 옥죄는 팔고취사제의 시행으로 평생 팔고문에 매달려 인생을 낭비하는 폐단이 생기자 이에 반발하는 지식인들의 저항이 거세졌다. 이지, 왕부지, 고염무 등  수많은 유학자들의 비판과, 팔고취사제의 무용론과 폐지를 주장하는 상소가 줄을 이었다. 명ㆍ청대 500년을 이어온 팔고취사제는 청나라 광서제에 의해 폐지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때 팔고취사제를 비판한 중국의 유명 소설인 <홍루몽>ㆍ<유림외사>ㆍ<요재지이>가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러나 팔고문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문장을 배우는 초심자에겐 올바른 문장작법의 기본원칙을 제시해 주는 역할도 톡톡히 했다. 현 한국문단의 치부이기도 한 그렇고 그런 글 몇 편으로 등단이라는 형식만 갖춘 어중이떠중이 문인의 양산을 생각해 보면 팔고문의 부정적 측면만 강조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지난 역사의 옳고 그름은 온고지신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객관적 시각에서 판단해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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