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23:06 (목)
"한국 정착 어려움 겪는 고려인의 든든한 버팀목 될 것"
"한국 정착 어려움 겪는 고려인의 든든한 버팀목 될 것"
  • 이정민 기자
  • 승인 2022.11.24 2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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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 사업 시 고려인 도움 감동 받아
귀국 후 지원 위해 부산서 김해로 이사
병원ㆍ은행 동행… 해결사 `미스터 황`
정책개선 제안서 제출 등 대변자 역할도
고충 듣는 사무실, 노래방 수익금으로 운영
황 원 선 대표 (구소련친구들)

 

한국 영화 `홍반장`(2004)에는 동네 어디선가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나타나 처리하는 동네 반장 홍두식이 등장한다. 영화 속 홍반장은 동네의 온갖 민원과 고충을 해결한다. 이처럼 김해에는 고려인ㆍ우즈베키스탄ㆍ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미스터 황`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다. 

지난 10일 김해시 부원동에 위치한 구소련 친구들 사무실에서 만난 황원선 대표는 쉴 틈 없이 바쁜 모습을 보였다. 인터뷰 도중에도 전화 너머 `미스터 황 통역 부탁해요`라는 어설픈 한국어를 구사하는 국내 체류 고려인과 중앙아시아인들의 전화에 "잠시만요" 하며 유창한 러시아어를 구사하며 최선을 다해 도와주려는 황원선 대표.

고려인 및 중앙아시아인들에게 창구역할을 하고 있는 황 대표의 이야기와 함께 구소련 단체에 대해 들어봤다.

우리는 한민족 `구소련친구들`
재한외국국적동포 고려인연합회 `구소련친구들`의 대표 황원선 씨는 2002년 정수기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로 넘어가 약 12년 동안 생활하면서 러시아어와 고려인 친구들을 많이 접했다. 그러다 지난 2014년 한국에 돌아와 부산에서 쉬던 중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보리스 리 씨가 김해에 일하러 오는 고려인들의 임금체불 등 해결에 도움을 요청해온 것이 계기가 됐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우즈베키스탄에서 알던 변호사 보리스 씨를 우연히 만나 한국어를 못하는 보리스 씨를 대신해 고려인들의 고충상담을 자연스럽게 들어주다 보니 김해에 정식으로 사무실을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지난 2015년 2월경 부산에서 김해로 넘어와 정식으로 구소련친구들을 결성했죠."

고려인의 고충상담을 위해 노력하는 황원선 대표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사람들을 만날 때 제 명함을 내밀면 먼저 `구소련친구들`이라는 이름에서 거부감을 느끼시는 사람들도 대부분 있었죠. 대부분 명칭을 보고 반사회적이고 무섭다는 편견의 눈빛으로 보시지만 `구소련친구들`은 1860년 무렵부터 1945년까지 항일독립운동, 강제동원 등으로 러시아 및 구소련 지역으로 이주했던 고려인과 러시아 연해주에 살다가 소련 정부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쫓겨나야 했던 동포들의 의리와 우정을 담은 재한 외국국적동포 고려인 연합회라고 오해를 풀고 싶어요."
명칭에서 받는 오해와 함께 그가 고려인 또는 고려인 2, 3, 4세대라서 그들을 도와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많은 분이 오해하지만 저는 한국인이며 고려인을 돕는 거는 저도 똑같은 도움을 고려인들에게 받았기 때문이죠"라고 웃으며 말한다. 12년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한 달 정도 몸살을 앓을 때 이웃에 있던 고려인이 병원에 데려다주고 약도 사주고 심지어 김치도 주면서 간호해주면서도 황 대표가 자신들과 같은 동포라는 마음으로 물심양면으로 아픈 그를 도와주던 기억이 현재 황 대표가 고려인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앞장서게 된 이유이다. 

평범해보여도 누군가에는 특별한 일 
고려인을 넘어 김해 내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인까지 황 대표를 찾는다. 그들이 황 대표를 찾는 이유는 대부분 특별한 일이 아닌 평범한 일이다. 전세계약서를 작성하는 일, 병원 치료, 은행 업무 등 외국 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지만, 한국말이 서툰 또는 전혀 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에게는 버거운 일이다. 

또한, 집주인에게 세탁기가 고장 났는데 말이 안통하니 전화를 대신 받아 통역하고 설명하는 일,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작성하고 면접 시 같이 동행하는 그런 생활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황 대표는 통역 등을 해주며 그들이 한국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소통창구가 됐다. 

"저를 찾아온 사람들은 거의 일상적인 것도 있지만 취업 관련 내용이 60%를 차지하죠. 그러나 한국어를 못하는 고려인들의 취업 과정도 쉽지 않고 회사에서도 한국어를 할 줄 알고 오래 있을 사람을 선호하기에 구직자리를 구하는 중 직장을 찾지 못해 돌아가는 경우를 보며 안타까움을 많이 느끼기도 하죠. 그렇기에 재외동포(F4) 비자를 받은 고려인과 결혼한 타민족 배우자(F1)도 최소한 아르바이트라도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해줘야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황원선 대표는 고충상담 등 고려인 동포를 지원하면서 고려인동포들을 위한 정부정책개선을 위한 제안서도 적극적으로 제출 및 발언하는 그런 대변자 역할도 하고 있다. 

위급한 상황 속 유일한 창구역할
지난 2018년 10월 20일 김해시 서상동 4층 빌라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진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고려인 남매의 사망 소식을 황 대표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당시 남편의 임금체불 문제를 도와주면서 인연이 돼 알게 된 고려인 엄마가 있었는데 그날 `미스터 황, 불이 났는데 아이 4명이 없어요. 찾아주세요`라는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왔다. 긴급한 상황임을 인지한 후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 경찰관들에게 자녀들의 위치를 수소문하고 주변의 여러 단체의 도움을 요청하는 등 고려인 가족을 도와줬는데 그때가 가장 슬프면서도 지금까지 뇌리에 박혀있는 사건이다. 그때 이후로 사람들이 월급도 안 받고 도대체 이러한 활동을 왜 하느냐고 물을때마다 저는 무엇을 바라고 하면 이 일을 할 수 없고, 큰 기술을 요하는것은 아니지만 돕는다는 마음 하나로 하다 보니 그들을 도와주게 되는 거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황 대표는 "지난 2017년 크리스마스트리 경연대회에서 우즈벡, 러시아 등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트리를 만들고 있을 때 고려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고려인들에게 너희가 생각하는 문화를 트리안에 담아보라고 했더니 한복, 아리랑 등등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의 문화를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들이 우리와 같은 동포임을 느끼게 하고 자신들만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국내에 정착하려는 고려인들을 위한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전문적인 영역에서 도움을 주기엔 능력이 부족하지만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고려인지원센터를 세워 전문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 하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현재 황원선 대표는 별도의 후원금이나 기부금을 받지 않고 자신이 운영하는 러시아 노래방이라는 작은 노래방의 수익금을 사무실의 운영 경비로 지출하며 고려인들의 고충을 들어주기 위해 김해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황원선 대표가 고려인을 위한 마음은 1등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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