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05:38 (수)
의료기 `명검` 보유 확인… `고수`가 되는 사명 일깨웠다
의료기 `명검` 보유 확인… `고수`가 되는 사명 일깨웠다
  • 경남매일
  • 승인 2022.11.23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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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 로아메드 대표 독일 MEDICA에 가다 ②

14∼17일 뒤셀도르프서 열려
세계 73개국 7천개 기업 참가

첫 전시회 참가 대체로 성공 자평
강한 지배력 가진 기업 평가 기대
공룡기업 로슈 등 전시회 미참가
`큰 물고기`의 무관심 측면 이해
발품 팔아 경쟁 기업 기술 파악

"이대론 우리 제품 잠재력을
꽃피우지 못 하거나 우리
자신이 망가질 수 있다는
위기감 느껴 경영 혁신 다짐"
지난 14∼17일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의료기기 전시회 MEDICA 행사장에 많은 인파가 찾았다.
MEDICA 행사장 내 부스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
 (주)로아메드 최임철ㆍ허성원 두 공동 대표와 통역사 송한결ㆍ허수범 씨가 부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주)로아메드가 개발한 채혈기 `란셋`의 팸플릿.

 

`진짜 큰 물고기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 전시회는 자기 자신을 미끼로 내세워 남을 잡고자 하는 그물과 같은 것이다. 자신의 매력을 최대한 잘 보이도록 포장해 남들의 관심을 끌거나,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타인을 찾아 비즈니스 관계를 엮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 중개하는 사람들이 서로 그물처럼 얽히고설킬 수 있도록 장을 펼쳐놓는 곳이 바로 전시회다.

우리 로아메드도 전시회의 그런 취지에 잘 부합하도록 노력했다. 비록 전시회에는 처음 참가하지만 대충 결산을 해보니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자평을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전시 제품 중에서 우리 제품을 능가하거나 우리 비즈니스를 위협할만한 경쟁 상대는 발견하지 못했다. 우리 제품의 효과가 출품한 관련 업계에서는 제법 소문이 났고, 많은 사람들이 그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 부스를 찾아왔다. 여러 딜러들은 적극적으로 반응해줬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우리는 당초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가진 로슈, J&J 등과 같은 글로벌 공룡 마켓터 기업들이 우리 제품을 보고 그 진가를 알아봐 주기를 기대했었다. 그런데 그들은 찾아오지 않았다. 아니 아예 전시회에 참가하지도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들은 이 전시회라는 그물이 포용하기에는 너무 힘이 세고 덩치도 컸다. 그들은 이미 세계 의료기기 유통 질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이런 전시회에서 무언가를 도모하는 것은 그들에게 비효율적이다. 이런 곳에서 자신들의 이미지나 비즈니스 기회를 더 좋아지게 노력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자체 조직이나 얼라이언스를 확고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큰 물고기는 그물로 잡을 수 없다. 우리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고래와 같은 공룡 기업을 잡는 전략을 연구해야 한다. 우리는 고래꿈을 꾸는 새우다.

`잡을 수 있다면 잡아봐.` 전시회는 자신의 제품을 자랑하기 위한 자리다. 그래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자기들의 것을 알아봐 주길 바란다. 비즈니스 파트너를 늘리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것을 마냥 드러내 놓을 수는 없다. 무턱대고 노출하면 위험이 따른다. 자사의 기술이나 노하우가 경쟁자에게까지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도 열심히 발품을 팔며 돌아다닌 이유는 경쟁 기업들의 기술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그렇게 했을 것이다. 경쟁자들의 기술을 파악해 자신의 위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전시회 참가의 주요 목적 중에 하나다. 손자병법에서도 그랬듯이 나를 알고 남을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은 법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남들에게 잘 보여주기 위해 전시회에 기껏 참가해놓고서는 가급적이면 보여주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금세 카탈로그를 쥐어주고는 우리의 정체를 밝히면 그제서야 아차 하며 뺏어가려 한 적도 있다. 이런 행태는 주로 작은 부스를 쓰는 약소 기업에서 나타난다. 

공개의 적극성 여부는 전시 기업들의 전략에 따른다. 위험을 무릅쓰고 적극적으로 공개할 것인가, 아니면 기술 보호를 위해 소극적으로 숨길 것인가. 

우리는 후자를 택했었다. 최소한으로 공개하고 최대한 숨기기로 했다. 참관객에게 우리 제품의 효능은 많이 느끼게 하면서, 샘플 제공이나 구조 설명을 제한해 우리 기술을 파악하기 어렵게 한 것이다. 우리 제품이 아직 양산 전이고 인증 등의 절차를 완수하는 데 시간이 더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기업의 부스를 방문하면 과도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공개했다. 우리가 동종 제품을 만드는 업체라고 미리 말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샘플 제품을 종류대로 아낌없이 쥐어주기도 하고, 카탈로그가 무겁다고 불평하면 정보가 풍부하게 저장된 USB 메모리의 디지컬 카탈로그를 주저 없이 준다. 디지털 카탈로그를 가져와서 컴퓨터에 연결해보니 우리 같은 신생기업에게는 정말 유익한 데이터들이 많이 들어있었다. 그 인심 좋은 기업이 고맙다. 언젠가 비즈니스 파터너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숨기는 기업의 입장은 백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반면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기업은 어떤 입장과 철학일까? 그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신들의 귀중한 자료와 정보를 그토록 방만하게 공개하는 것일까? 우리도 언제까지나 소심하게 가리고 숨기며 쩨쩨하게 살 수는 없다. 언젠가는 그들처럼 대범하게 자신감을 드러내고 싶다.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 `나를 잡을 수 있다면 잡아봐`라는 뜻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제목이다. 대범한 기업들의 자신감은 이 영화 제목과 같지 않을까. `베낄 테면 베껴보라. 너희들이 베낀다고 해서 우리와 같아질 수 없다. 너희들이 베끼면 우리는 더 신속히 혁신을 해내어 앞으로 달려갈 것이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이 바로 이런 경지일 것이다.

`칼 좋다고 고수가 된다면, 무림 맹주는 온통 대장장이였을 것이다.` 이 말은 내가 만든 말이다. 강의나 컨설팅에서 이 말을 종종 써먹는다. 많은 경영자들이 제품만 좋으면 혹은 기술이나 특허만 좋으면 사업이 성공할 것으로 믿는다. 과거에 그런 시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물자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던 때의 이야기다. 지금은 모든 정보가 플랫화 돼 세계에서 누구나 자리에 앉아 실시간으로 비교 검색할 수 있고, 어떤 제품이든 수요를 훨씬 초과해 넘쳐난다. 그리고 선택의 기준이나 취향은 지역별, 세대별, 계층별 등에 따라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좋은 제품이라고 해서 그 비즈니스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특허로 무장한 우수한 제품이 시장에서 맥없이 실패하는 사례는 훨씬 더 많다.

기술이란 것은 무기와 같은 것이다. 무협지에 나오는 칼과 같다. 명검은 뛰어난 대장장이가 만들지만 그 명검을 가졌다고 해서 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명검이 아무나 일시에 고수로 만들어 주거나 무림 맹주를 만들지 못한다. 하수의 손에서는 아무리 좋은 검도 그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한다. 오히려 보유한 사람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고수들이 명검을 탐내어 달려들기 때문이다. 명검은 결국 고수의 손에 있지 않으면 그 가치가 사장되거나 가진 자를 망치게 된다. 

이번 전시회가 우리에게 준 매우 중요한 깨달음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명검을 보유했지만 고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제품의 효능을 능가하는 경쟁사 제품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명검과 같이 뛰어난 기술을 보유했음은 확인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뛰어난 기술을 자유자재로 다뤄 세계 시장에서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조직, 리더십, 경영 역량 등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대로는 우리 제품의 잠재력을 꽃피우지 못하거나, 우리 자신이 망가질 수 있다.

이제 우리의 사명은 고수가 되는 일이다. 무공을 연마하듯 필요한 경영 역량을 신속히 갖춰야 한다. 

 `시간이란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을 막아준다.` 물리학자 존 휠러의 말이다. 시간은 결국 우리 편이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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