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늪에서 살아나는 정의
거짓의 늪에서 살아나는 정의
  • 류한열
  • 승인 2022.11.2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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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우리 정치사는 도전과 응전으로 가득차 있다. 우리 정치를 도도한 역사의 흐름으로 접근하는 바른 역사의식을 깔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같은 종류의 생물들이 상부상조하는 공생은 다른 생물을 죽이면서 만들어낸 응전의 결과다. 한 종류의 생물이 번성하는 들판에 다른 종이 활개를 치기는 어렵다. 우리 정치에는 같은 종이 뭉쳐 다른 종을 죽이는 도전과 응전이 그대로 녹아 있다. 가장 자연스러우면서 가장 후진적인 양면성을 가진 우리 정치사는 생존의 본능만을 생산하고 있다.  

생물이 자신의 뿌리 근처에 `타감물질`을 내뿜어 다른 식물이 뿌리는 내리지 못하게 하는 본능적 행동을 우리 정치인 대부분은 체득하고 있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의 퍼즐이 맞춰지면서 실체가 솟아오르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어떤 정의도 필요 없고 단지 독소를 뿜어 상대를 죽이려는 전략만 있을 뿐이다. 단군 이래 최대 치적인지 비리인지 아리송한 대장동 카르텔을 보면서 야당은 "야당 죽이기"라 하고 여당은 "바로 진짜 몸통"이라고 맞서고 있다. 사안을 두고 달리 해석할 수 있고 결론이 나기까지 여러 추측과 예단이 있을 수 있지만 여야는 무조건 상대에게 칼을 꽂는다. 상대를 죽이면 진상이나 정의는 필요없다는 결의를 여야는 늘 보이고 있다.

상대 당이 죽어야 자기 당이 사는 몰인정한 정치판에서 자비를 구하는 일은 말도 되지 않는다. 당연히 예리한 칼을 들고 상대의 급소를 찔러야 내가 사는 정치판을 보고 있으면 결과가 나오기까지 과정은 추할 수밖에 없다. 여야가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 가혹한 이유를 들춰 보면, 생물의 공생은 다른 생물을 죽이면서 만들어낸 승리라는 `순리`에 예외 없이 충실하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다.

모든 정치선거에서는 상대를 죽이고 내가 사는 생존 본능에 충실하면 승리할 수 있다. 선거운동을 민주주의 꽃이라고 하는 이유는 승리한 후보에서 나오는 말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모든 후보가 맞닥뜨리는 검증의 터널에서 제대로 사람의 향기의 내지는 못한다. 상대를 죽이기 위한 전략에서 나온 말이 판단을 흐리게도 하지만, 결론은 "별사람 없다"로 모아진다. 생존의 법칙에서 승리자가 나올 뿐이다. 

우리 정치의 블랙홀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기류다. 검찰은 대장동 완결판으로 칼끝을 이 대표로 향하고 있는데, 이 대표는 연일 초연하게 민생을 이야기한다. 생존 본능의 판 위에 도전과 응전의 완결판을 매일 연출하는 우리 정치는 거짓의 늪에서 살아나면 정의의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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