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9:12 (금)
고통에 대한 두 개의 화살
고통에 대한 두 개의 화살
  • 도명스님
  • 승인 2022.11.14 2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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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br>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지만 좋지 않은 일도 많이 겪는다. 우리 삶이 아무 문제도 없으면 좋으련만 이런저런 사고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예고 없이 일어난다. 알 수 없는 미래가 때론 희망과 성공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종종 실패와 좌절도 가져다주기에 마음 한쪽에는 늘 근심이 뒤따른다. 

인생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걱정거리가 기다리고 있는 식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걱정거리들은 일상의 소소한 일들로부터 큰 사고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붓다께서 말한 `모든 것이 괴로움`이란 일체개고(一切皆苦)의 의미도 이처럼 우리의 삶이 안정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의지하는 종교도 대개 그 시작은 안정적인 생존에 대한 감사와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영생에서 출발한다.

이와 같이 인생의 도상에서 원치 않는 일이나 뜻하지 않는 사고와 죽음을 경험하면 대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이때 우리는 생로병사라는 피할 수 없는 인생 문제와 함께 삶의 도상에서 일어나는 각종 고통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불교에서는 고통을 벗어나 즐거움을 얻는 것을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 하여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로 삼는데 과연 가능한가. 물론 고통을 벗어난다는 답도 중요하지만 순서를 따지자면 무엇이 고통의 원인인가? 라는 문제를 잘 살피는 자세가 먼저 필요하다. 왜냐하면 모든 답은 문제 안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현상을 경험할 때 일어나는 부정적 감정인 고통은 고(苦)와 통(痛)으로 이루어진 글자다. 일반적으로 고와 통을 하나로 보아 그냥 `괴로움`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괴로울 고`와 `아플 통`으로 서로 연관성은 있어 보이지만 별개다. 알고 보면 `고`는 정신적인 감정의 영역이고 `통`은 육체에 나타난 현상의 영역이다.

일반적으로 불안, 공포, 침울함 등의 괴로움은 어떤 일을 경험하고 나서 일어나는 감정들이다. 개인차는 있을 수 있지만 실패와 사고 그리고 가족과 지인의 죽음 등 부정적인 상황을 접하면 대개는 좌절과 상실감의 괴로운 감정이 뒤따른다. 그러나 일어난 일에 대한 괴로움의 정도는 절대적이지 않으며 각자의 주관적인 해석에 의해 달라진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인생에서 겪는 모든 현상은 인과에 의해 정확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만 일어난다. 일이 일어나고 난 후 "이 일이 왜 나에게 일어났는가. 이것은 뭔가 잘못됐어"라고 생각해도 그것은 개인의 생각이지 객관적 사실은 아니다. 왜냐하면 일어난 모든 현상은 각각 그 이전부터 내재한 조건, 즉 카르마(업)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어난 현상 자체를 부정해보아도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커질 뿐이다.

한편, 세인들의 잘못된 통념 중 하나는 부처님과 도인(道人)들은 병도 들지 않고 아프지도 않을 것이란 믿음이다. 깨달은 이들은 늙거나 병도 들지 않는 불변의 완전성을 갖춰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도 육신을 가진 이상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지 않을 수 없었고, 실제 부처님은 입멸 전 기력이 쇠하여 설사 같은 소소한 질병은 겪으셨다. 그리고 육신의 죽음이 다가왔을 때 죽음조차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전 그는 죽음이 두려워 태자의 자리를 박차고 출가해 불멸의 삶을 추구했다. 하지만 수행하여 깨달은 존재의 실상은 모든 것이 변해가고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붓다가 육신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였던 것은 형성된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없다는 존재계의 법칙을 뚜렷이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도인들도 물리적 세계의 법칙 속에 있으므로 부딪히면 아프고 병도 걸릴 수 있다. 

도인이든 범부든 과거에 지었던 업이라는 첫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없고 똑같이 맞는다. 다만 도인은 그 원인을 알기에 타인과 세상을 원망하거나 잘못 대처하여 받는 두 번째 화살은 맞지 않는다. 도인은 현상에 의한 통증은 있지만 무지로 인해 스스로가 만드는 괴로움은 없는 것이다.  근세에 도인으로 이름난 큰 스님이 몸이 아파 자리보전을 하고 있었다. 그때 큰스님을 모시던 시자가 "큰스님은 도인이신데도 아프십니까?"라고 물었다. 큰스님은 시자를 불러 꿀밤을 한 대 주면서 "너도 맞으면 아프듯이 나도 꼭 같이 아프다. 이놈아!" 하셨다는 것이다. 아플 때 "아야, 아야, 끙, 끙" 소리 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소리를 통해 통증도 경감된다. 때론 소리 내어 울고 아픔을 드러내는 것이 마음속 깊이 병들지 않게 한다. 다만 지나간 현상을 오래 집착하여 괴로움을 만드는 것은 본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다. 일어나는 현상을 잘 받아들여야 하는 만큼 보내기도 잘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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