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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밖을 내다보자 30
나라 밖을 내다보자 30
  • 박정기
  • 승인 2022.11.14 2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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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12월 14일, 동북군 14만(장쉐량), 서북군 4만(국민당), 홍군 9만 명으로 구성된 항일 연합군이 구성되고, 장쉐량이 연합군 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추대되었다.

실은 반란의 소란 중 장 총통의 운명도 우여곡절을 겪는다. 동북군 다수 장교들이 총통을 처단하자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무렵 저우언라이나 의협심 강한 장쉐량 같은 사람이 조정을 안 했으면 장 총통도 시안에서 죽었을 것이다. 장쉐량이 몸으로 막은 덕분에 살게 되었다.

반란을 일으켰던 장쉐량은 죄책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의형(義兄)인 총통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다. 대의를 위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미안한 마음이 가슴을 짓누른다. 장쉐량은 큰 결단을 내린다.

형님에게 용서를 빌자. 난징까지 같이 가서 사죄하자. 그의 결단은 생명을 거는 모험이다. 반란군의 괴수가 난징에 간다? 그러나 그는 서슴지 않고 자기의 전용기로 총통을 호위해서 난징으로 함께갔다.

장쉐량은 당시 군벌 중 최강 동북군 50만 명(시안의 14만은 동북군의 일부)의 주인이다. 만주에 남아서 얼마든지 권세를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총통과 동행했다. 난징에 도착해서는 군율에 따라 처벌까지 하라고 자청하였다.

장쉐량은 의협심이 강한 열혈 36세, 장 총통과는 형님, 동생 하는 의형제 사이였다. 존경하는 형님에 대한 배반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대의(大義)를 위한 배반이라지만 장제스도 난감하였을 것이다. 쉐량이가 나를 배반해? 이놈을 그냥…. 괘씸하다. 그러나 자기를 따라 난징까지 왔다. 집안에 들어온 새는 잡지 않는다고? 총통이라는 공인으로서, 의형제란 사적 관계 사이에서 총통은 고민했을 것이다. 반란은 물을 것도 없이 사형이다. 그걸 알고도 쉐량은 난징에 왔다. 총통은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12월 31일, 군법회의에서 회부되었다. 정상이 참착되어 사형은 면하고, 10년 금고형과 5년간 공민권 박탈 선고를 받는다. 총통은 바로 다음 날 사면령을 내린다. 

두 남자의 우정과 미움이 얽힌 복잡한 인간관계는 한 편의 드라마다. 유비의 도원결의 현대판인가. 쉐량이 멋있고, 장제스도 대인이다. 장제스는 마오쩌둥에게 패하여 대만으로 도망갈 때도 쉐량을 데리고 간다. 시안사건 후 장쉐량은 한 번도 정치 정면에 나서지 못하고 포로 같은 생을 보냈다. 그는 2001년, 하와이에서 101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왜 시안사건을 중시하는가? 시안사건을 계기로 중국 공산당은 항상 쫓기던 신세를 벗어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정치공작과 군사작전을 펴나갈 수 있었다고 본다. 시안 이후, 기복은 있었지만 대세는 공산당으로 기울어졌다고 나는 본다.

시안사건의 연출자는 누구였을까? 장 마오의 대결에서 운동장을 기울게 한 숨은 지모자는 과연 누굴까? 내 생각이지만 저우언라이다. 저우는 진짜 거물이었다. 천하를 보는 눈, 설득력, 지모, 잔인성에 인물 좋은 것까지, 중국 지식인 사이에 인기는 마오쩌둥을 능가할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두 거물을 들라면 마오와 저우다. 마오가 우뚝한 보스였다면, 저우는 명참모였다. 마오가 거산이라면 저우는 대하였다. 마오가 태산처럼 버티고 있으면, 저우는 물처럼 골짜기마다 스며들고 채우고, 어루만졌다. 마오는 실수를 해도 저우는 빈틈이 없었다. 둘 다 권모에는 달인이며, 냉혈한들이었다. 마오 없는 중국 공산당을 생각할 수 없고, 저우 없는 공산 중국을 생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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