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18:57 (화)
우리는 왜 바르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왜 바르게 살아야 하는가
  • 허성원
  • 승인 2022.11.01 2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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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br>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우리는 왜 바르게 살아야 하는가. 이 주제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국가` 제1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두고 폴레마르코스와 트라시마코스 등과 논쟁을 벌인다. 케팔로스가 먼저 정의에 대한 논제를 촉발하고 떠나자, 그의 아들 폴레마르코스가 이어받아 `정의란 친구에겐 이익을 주고 적에겐 해악을 주는 것`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그러면 악한 자에게 이득을 주고 선한 자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정의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폴레마르코스는 즉각 수긍한다.

이어서 트라시마코스가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고 하며 논쟁을 이어간다. 그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의사의 능력은 환자를 치유하기 위한 것이고, 통치자의 권력은 약자 즉 국민의 이익을 위한 것이듯이, 정의가 강자의 이익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반론한다. 그럼에도 트라시마코스는 불의를 지혜와 덕으로 취급하면서 정의는 그 반대로 여기는 자신의 주장을 고집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진지하게 논증한다. 정의가 불의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하며, 그 이유 세 가지를 든다.

첫째, 정의로운 자는 지혜롭다. 음악가로서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과 그렇지 못 한 사람이 있다면 누가 더 지혜로운가. 당연히 조예가 깊은 쪽이다. 의사나 다른 전문가 등 어떤 분야에서든 전문 지식이 깊은 자가 더 지혜롭다. 지혜로운 사람은 굳이 남을 앞지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지하고 열등한 사람은 항상 타인을 이기려고 덤벼들며,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우긴다. 남을 굴복시키려 들거나 열등함에도 더 뛰어나다고 여기는 것은 정의에 반한다. 그래서 정의는 지혜를 닮았고, 불의는 무지와 열등에 가깝다.

둘째, 불의는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한다. 트라시마코스는 불의가 정의보다 더 크고 강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의가 불의보다 더 지혜롭고 더 높은 덕이라는 점과, 불의가 분열과 증오를 불러오는 반면 정의는 우애와 협조를 부른다는 점에는 공감한다. 군대, 도둑 혹은 강도와 같은 자들의 집단이 불의의 뜻을 품고 자신들의 강한 힘을 이용하여 나쁜 일을 도모한다고 하자. 그들은 불의의 뜻을 가졌기에 분열과 증오로 서로를 해치게 되며, 결국 그들이 가진 본래의 힘을 유지하거나 발휘할 수 없다. 이처럼 좋은 집단이든 나쁜 집단이든, 불의가 개입되면 불화로 인해 일을 그르치게 된다.

그래서 불의는 각 개인과 집단의 이익과 대립되고, 물론 정의에도 대립한다. 그렇기에 불의한 자는 신의 선택을 받을 수 없어 신의 적이 되고, 정의로운 자는 신의 친구가 될 것이니, 정의가 모든 면에서 불의보다 뛰어날 수밖에 없다. 지혜든 덕이든, 그리고 뜻을 모아 어떤 일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든 모두 그러하다. 그러므로 불의한 자들이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어 그것으로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다는 말은 옳지 않다. 그들이 진정한 의미의 악인들이라면, 그렇기 때문에 그들 집단은 어떤 일도 이루지 못한다.

셋째, 정의로운 삶이 행복하고 이득이다. 눈이 없으면 사물을 볼 수 없고, 귀가 없으면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모든 사물에는 각기 고유한 기능이 있고, 그 고유한 기능을 그 사물의 `덕`이라 부른다. 눈과 귀가 덕을 잃고 악덕에 물들면,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 사람의 정신에도 고유의 기능이 있어, 우리의 삶은 그 정신의 기능에 의지한다.

정신의 덕은 정신의 기능을 올바르게 잘 지키는 것이니 그것은 곧 정의이다. 고유한 덕의 기능을 상실한 악덕의 정신은 불의가 된다. 훌륭한 덕의 정신을 가진 사람과 악덕의 정신을 가진 사람의 삶은 어떻게 다른가. 정의롭고 훌륭한 정신을 가진 사람의 삶은 그 본연의 덕에 따르므로 잘 살게 되며 행복을 누리고, 그렇지 못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잘살 수가 없어 불행할 수밖에 없다. 행복은 그 자체로 유익한 것이니, 불의에 빠진 삶이 정의로운 삶보다 결코 이득이 될 리가 없다. 그러니 정의는 곧 행복과 이로움이다.

이상, 바른 삶에 관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한 번쯤은 제대로 정리해두고 싶어 간추려 옮겨보았다. 2500년 전의 논리이기에 선뜻 수긍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나름 걸러서 받아들일 만하다. 소크라테스의 말씀을 되새겨보자. 우리는 왜 바르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이 지혜이고, 성취를 가져다주며, 행복인 동시에 이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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