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 신문에서 최고령 우주인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그 주인공은 작년 10월, 90세의 나이로 우주여행을 다녀온 캐나다의 원로 배우 월리엄 새트너였다. 우주여행 후 인터뷰에서 그는 뜻밖의 말을 하였는데 상당히 인상 깊은 내용이었다. "내가 우주를 바라봤을 때 어떤 신비도 경외감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본 모든 것은 죽음이었다. 우주의 잔인한 차가움은 생명체를 키우는 지구와 대조를 이뤘고 그것은 나를 벅찬 슬픔으로 가득 채웠다. 내가 생각했던 모든 것이 틀렸고 내가 우주에서 보리라 기대했던 모든 것도 틀렸다"라는 소회를 말했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과거 대부분의 우주여행자들이 말했던 긍정적인 시각과는 사뭇 달랐다.
개인적 시각차가 있겠지만 필자에게 새트너의 말은 진실로 다가왔다. 누구나 우주여행이란 새로운 경험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는 충분히 있을 것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주가 아름답고 신비스러울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을 한다. 하지만 생명 없는 진공의 암흑세계인 우주에 대한 체험은 그의 말대로 별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끝없는 암흑만이 존재하는 공간이 무슨 재미가 있으랴. 이처럼 빛이 있는 지구에서 바라보는 우주공간과 칠흑의 지구 밖에서 경험하는 우주는 충분히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새트너가 경험한 가장 큰 차이는 생명이 넘쳐나는 지구와 생명이 없는 우주공간에 대한 것이었다. 그도 생명이 없는 지구 밖을 경험하고 나서야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이다.
`생명`이란 한 단어는 우주에서 보면 기적과 같은 대사건이다. 이건 확률적으로 보아도 분명한데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천문학적인 예산으로 상상할 수 없는 먼 거리의 우주 저 너머로 탐사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생명의 신호는 전혀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도 증명이 된다. 만일 내일이라도 탐사선이 우주에서 개미 같은 생명체는 고사하고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이라도 발견하게 된다면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 전체는 생명 없는 거대한 죽음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우주 전체에서 보면 비교가 불가능한 특이 현상이다. 텅 빈 공간과 생명없는 무기물 덩어리에서 우연한 자연현상에 의해 식물과 함께 동물 같은 생명체가 나타난 것이다.
거대 자연의 흐름 속에서 나타난 생명체는 그것이 만들어진 환경에 의해 성장과 쇠락의 변화를 겪다가 인연이 다하면 끝내 소멸해 간다. 모든 생명체는 인과에 의한 과거의 카르마(업)를 지니고 있으며 과거의 그 흐름과 현재의 변수들이 합해져 발전과 쇠퇴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이렇게 형성된 생명들은 매 순간 `살아있음`이라는 생명현상을 만든다. 그리고 완벽히 동일한 조건이 불가능한 우주공간에서 모든 존재들은 `유일한` 생명현상을 드러낸다. 사실 비슷해 보여도 100% 똑같은 모습과 기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예를 들면 비슷한 모습의 일란성 쌍둥이라도 자세히 관찰하면 완벽하게 동일한 것은 없다. 생명 본질로 미세하게 들어가면 비슷해 보여도 결코 같지 않다는 결론이다.
이는 다른 존재와의 비교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해당되는데, 모든 존재는 탄생에서 소멸까지 단 한 번도 완전히 똑같은 경험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어제 뜬 태양을 오늘도 똑같이 보았고 어제 먹은 음식을 오늘도 똑같이 맛보며 어제 들은 음악을 오늘도 똑같이 들었다고 느끼거나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비슷한 것의 체험에 대한 뇌의 의도적인 착각일 뿐이며 이는 변화를 최소화해 에너지 소모를 줄이려는 뇌의 효율적 생존 전략이란 점이다.
과학에서 "시위를 떠난 화살은 결코 과녁에 도달하지 못한다"라는 명제가 있다. 동일한 개체성이라 하더라도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기에 시위를 떠난 화살과 과녁에 명중한 화살의 물질적 성분은 조금이라도 변화했기에 결코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이 무상(無常)하여서 인간의 삶은 물론, 우주 전체가 태초부터 지금까지 동일한 현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것이 객관적 사실이다. 이렇게 알고 보면 모든 존재는 매 순간 절대유일의 순간을 만나서 절대유일의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나 건곤독보(乾坤獨步)의 본래 의미가 오직 유일한 생명작용에 대한 찬사이지 홀로 특별하다는 자기과시의 말이 아닌 것이다.
며칠 전 이처럼 고귀한 절대유일의 소중한 생명들이 불의의 사고로 이생에서의 인연을 다했다. 너무나 안타까운 청춘들이기에 마음이 무겁다. 다만 죽음이 없는 생명의 바탕 위에서 다음 생에는 더 나은 세계로 가시기를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