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을 내다보자 27
나라 밖을 내다보자 27
  • 박정기
  • 승인 2022.10.3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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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br>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한편 1921년 7월 31일, 마오쩌둥 등 2명은 상하이에서 천두슈를 위원장으로 해 중국공산당을 창당하였다. 위안스카이가 죽고 천하는 다시 군벌이 할거하는 현대판 전국시대가 시작되었다.

1922년, 천하 정세를 예의 관망하던 쑨원은 코민테른과 손을 잡는다. 할거하는 군벌들을 정복할 길이 요원했기 때문이다. 1923년엔 당시 중국 담당 코민테른 요원 보로딘과 협의, 중국공산당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기 위해 공산당 인사들의 개인 자격 국민당가입을 허락한다.

쑨원의 생각과는 달리 보로딘은 국민당에 다수 코민테른 요원을 침투시킨다. 보로딘은 국민당을 소비에트 연방의 공산당 산하조직으로 만들려고 공작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 중국공산당의 활동은 매우미약했다. 실제로 1921년 중국공산당 당원은 인텔리를 중심으로 한 300여 명, 1925년에도 1500여 명에 불과했다. 반면 국민당은 1922년에 이미 50000여 명의 당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1924년, 중국국민당 1차 광저우 전국대회에서 제1차 국공합작이 결성되었다. 1923년 초, 쑨원은 장제스를 소비에트 군의 전략, 전술 연구를 위해 모스크바에 파견한다. 1923년 말 귀국한 장제스 황푸 군관학교를 설립, 교장으로 취임한다. 이때 정치 주임으로 발탁된 사람이 저우언라이다. 학생들의 실태를 누구보다 잘 파악할 수 있는 요직의 저우언라이는 이때 많은 우수 학생들과 특별한 사제관계를 맺는다. 린뱌오 등 다수가 훗날 장제스와의 전쟁 때 중국 공산군의 중요 지휘관으로 활약하게 된다. 1925년 3월, 쑨원이 서거하자 장제스가 후계자로 등장한다. 1926년 3월, 소련 고문단을 추방하고 국민당 내 공산당원을 숙청하기 시작하였다. 코민테른도 장제스의 정책 변경에 놀라 조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마침내 1927년 국민당과 공산당은 결별하였다. 1차 국공합작이 무산된 것이다. 중국은 이때 두 개의 정부를 갖게 된다. 국민당의 난징정부, 공산당과 국민당이 합작한 좌파의 우한 정부. 그러나 이런 상황은 오래 가지 못한다. 다음 해 장제스는 우한 공산정부를 공격, 공산당은 숙청하고 우파는 흡수해 장제스의 국민정부가 국제사회의 공인된 정부가 되었다.

1926년 장제스는 북벌을 시작한다. 강성한 군벌들을 차례로 굴복시키며 1928년에는 동북 3성(봉천, 길림, 흑룡강)까지도 석권해 명실공히 중국을 통일한다.

중국대륙의 통치자가 된 장제스는 공산당을 뿌리 뽑기 위해 1930년과 1934년 사이에 4차에 걸친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폈다. 그러나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그러나 장제스는 32년 10월, 역량을 다시 집결, 70만의 대병력으로 공산당의 근거지인 중국 남부의 장시성 루이진을 포위 공격, 공산군은 전멸의 위기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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