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6:37 (금)
명화 러브 스토리
명화 러브 스토리
  • 이광수
  • 승인 2022.10.30 2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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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 수<br>소설가<br>
이 광 수
소설가

곱게 단풍 져 떨어진 가로수의 잎새들이 보도 위를 어지럽게 나뒹군다. 낙엽의 계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사랑이 그리운 계절, 우울한 기분이 가슴에 또아리를 틀며 감상에 흠뻑 젖는 고독한 계절이다. 봄에 만난 사랑 여름에 불태우고 낙엽 지는 가을이 되면 미련 없이 떠난다.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명화 러브 스토리를 리콜한다. 

비록 내가 왕자였던/ 날 좋아하던 그때/ 수줍게 꽃을 건네던 너에게/ 웃으며 내 손을 내밀었지/ 시간이 지나 내 생일날이었지/ 우린 몰래 달려 나갔지/ 온통 둘 뿐인 밤거릴 걷다가/ 너와 나의 눈이 마주친 그날/…… 명화 러브 스토리(Love Story)의 OST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거장 프란시스 레이의 배경음악은 영원한 고전이 되어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알리 맥그로우(제니 역)와 라이언 오닐(올리버 역)이 열연한 영화 러브 스토리는 명감독 아서 힐러가 메가폰을 잡은 로맨스 영화다. 지금으로부터 52년 전인 1970년에 개봉되어 공전의 대히트를 쳤다. 에릴 시걸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이 영화는 방황하는 청춘의 번민과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앵그리 영맨의 열정을 리얼하게 묘사했다. 촉망받는 미래가 보장된 거부의 아들 올리버와 예쁘고 착하지만 가난한 집안의 딸인 제니. 두 청춘의 애끓는 사랑을 슬픈 로맨스로 마름한 명화이다. 하버드대 래드클리프의 학교 도서관에서 마주친 두 사람은 운명처럼 한눈에 서로 반해 버린다. 사랑하는 제니와 올리브는 대학을 졸업하면 결혼하기로 약속한다. 어느 날 올리버는 아버지가 사는 대저택으로 그녀를 데려가 소개하면서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난한 집안의 딸인 것을 안 올리버의 아버지는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결혼을 선뜻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제니와 결혼하면 부자 관계를 끊고 학비는 물론 생활비도 주지 않겠다고 위협한다. 그러나 올리버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교회에서 간소하게 결혼식을 올린다. 두 사람은 경제적으로 힘든 나날이었지만 열렬한 사랑의 힘으로 버티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 유명한 장면인 학교 운동에서 눈싸움하는 모습은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순수한지 보여준다. 그러나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한 올리버는 학비를 벌면서 힘들게 공부한다. 제니 또한 학생들을 가르치며 어렵게 살며 경제적인 문제로 티격태격하기도 한다. 제니는 올리버가 고집을 꺾고 아버지와 화해해 주길 바라지만 올리버는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우수한 성적으로 로스쿨을 졸업한 올리버는 변호사가 되어 유명 로펌에 취직한다. 둘은 낡아빠진 헌 공동주택생활을 청산하고 깔끔한 새집으로 이사해 새 차도 사서 꿈같은 생활이 시작된다. 그러나 두 사람의 행복을 시샘한 여신의 장난이었을까. 제니가 몸이 아프다고 해 병원에 가서 검진하니 불치병인 백혈병 말기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의사의 말을 듣자 둘은 절망한다. 비싼 병원비 마련을 위해 악전고투하던 올리버는 결국 자기 고집을 꺾고 아버지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돈의 용처를 알려주어야 주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제니의 병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올리버는 그냥 집을 나와 버린다. 몹쓸 병으로 괴로워하는 제니의 모습을 본 올리버는 그녀에게 미안하다며 위로한다. 그때 제니가 괜찮다는 표정으로 올리버에게 한 말이 바로 `사랑은 결코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는다.-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라는 명대사이다. 결국 그녀는 세상을 떠나고 올리버만 혼자 남는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이 사랑에 취해 교정의 눈밭에서 눈싸움하며 뒹구는 모습이 오버랩한다. 교정의 돌계단에 혼자 앉아 제니와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올리버의 쓸쓸한 뒷모습이 애잔하다. 스노우 플로릭(Snow Frolic, 눈싸움) BGM이 잔잔히 흐르면서 엔딩 자막이 오른다. 이 영화의 눈싸움 장면은 그 후 영화와 드라마에서 수없이 패러디되어 유명해졌다. 

왜 사랑은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 안 될까. 그것은 사랑은 모든 것을 서로 공유하고 이해해주는 특별한 감정의 교류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실수나 잘못이라도 그걸 탓하기에 앞서 이해하고 용서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물질의 크기로 사랑을 저울질하고, 사랑한다는 고백을 위선과 거짓으로 눈속임하는 세상. 사랑을 등쳐먹고 사기 치는 자에게 사랑이라는 추상명사는 결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사치에 불과하다. 돈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는 청춘에게 러브 스토리는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사랑에 배신당하기 싫어서, 어설픈 사랑에 인생을 저당 잡히기 싫어서 독신주의자가 넘쳐나는 세상. 그러나 사랑은 결코 혐오하거나 기피할 대상이 아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꿈꾸던 사랑이 기적처럼 다가올지 아무도 모른다. 사랑은 삶의 시작이자 전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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