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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밖을 내다보자 26
나라 밖을 내다보자 26
  • 박정기
  • 승인 2022.10.24 2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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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br>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젊은이여! 논리에 묶이지 말라. 지식에 매몰되지 말라. 마음을 열어라. 머리 뚜껑을 활짝 열어라. 지식이나 논리는 때때로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
콜럼버스는 달걀 밑동을 잘라서 달걀을 세웠다. 세우라니까 잘라서 세웠다. 밑동을 자르지 말라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덩샤오핑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덥석 잡았다. 그리고 중국 인민을 살렸다. 공산주의로는 죽어도 안 되니까, 공산주의로는 인민을 먹여 살릴 수가 없으니까, 공산주의는 사실상 버렸다. 차마 버렸다고는 못 하니까 `사회주의 시장경제`라고 근사한 작명까지 해버렸다. 사회주의는 `통제경제`지 사회주의 어디에도 `시장경제`는 없다. 그러나 시장경제 한다고 누가 뭐라 하겠나?
덩샤오핑의 위대성은 바로 버리는 데(포기) 있었다. 공산주의까지도 버렸다. 안 버리면 그러한 발상이 안 나온다. 신주 같은 공산주의를 버렸기 때문에 시장경제가 나온 것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 굶는 공산주의보다 배부른 자본주의가 좋지. 그는 대의(大義)를 따랐을 뿐이다. 덩샤오핑은 아무나 되나? 어림도 없다. 열린 가슴, 고집, 용기, 그리고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벽`을 넘는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요즘 중국이 변하고 있다. 2012년 시진핑이 국가주석이 되면서 진짜 공산주의 국가로 서서히 회귀하고 있다. 그는 국가주석 임기제를 이미 폐지하였다. 내년 당 대회에서는 시 주석의 3연임이 승인될 전망이다. 어느 언론인은 시진핑 집권 10년도 못 되는 사이 중국을 60년 전 문화혁명 시절로 되돌려 놓았다고 평했다.

시진핑은 최근 `공동부유(公同富裕, 함께 잘살자)`를 내세웠다. 그러면서 재계는 물론, 교육, 연예계로까지 통제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해 지식층의 반발도 만만치 않은 듯 베이징대 경제학교수 장웨이잉은 2021년 9월, 공익성 민간학문 기구인 `경제 50인 논단(CE50)`에 정부가 경제를 통제하면 "시장의 힘에 대한 신뢰를 잃고, 정부 개입에 자주 의존하면 오히려 공동빈곤(公同貧困)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진정 중국을 위하는 뜻에서 걱정스럽다. 

젊은이들이여! 우리 앞에는 넘어야 할 벽이 수도 없이 많다. 새로운 시대를 위해 우선 버릴 그것부터 과감히 버리자. 열린 사고로 뜨거운 가슴으로 내일을 맞이하자.

1919년 5월 4일, 톈안먼 광장에 3000여 명의 대학생들이 집결하였다. 소위 5ㆍ4운동이다. 1차 대전 후 전후처리를 위한 파리강화회의에서 중국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요구는 1차 대전 전 독일이 소유한 산둥성의 권익과 일본과 맺은 불평등 21개 조를 무효로 하자는 것이었다. 학생과 시민들은 기대했던 파리회의가 무산되자 분노했다. 우여곡절 끝에 5ㆍ4운동은 성공을 거둔다. 학생뿐만 아니라 나중엔 시민과 노동자들까지 가세했기 때문이다. 5ㆍ4운동은 중국 국민의 눈을 뜨게 한 최초의 운동이었다. 제국주의와 봉건주의 타파를 외치며 일어난 이 운동은 중국 현대사의 출발점이 되었다. 5ㆍ4운동은 학생, 일반 시민, 노동자 등의 국민적 연대감을 형성하였다. 이때 노동자들의 정치참여는 이에 앞서 천두슈가 제창한 마르크스주의와 맞아떨어져 1921년 마오쩌둥의 공산당 창당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미 10여 년 전인 1911 신해혁명이 성공하자 쑨원은 1912년 1월 난징에 민주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쑨원은 민족, 민권, 민생을 강령으로 하는 삼민주의를 제창하였다. 아시아에선 처음 보는 공화국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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