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6:18 (토)
태도 선택의 자유
태도 선택의 자유
  • 허성원
  • 승인 2022.10.18 2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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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br>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군대 이야기다. 좀 고약한 선임하사가 있었다. 어느 휴일에 무슨 심사 꼬인 일이 있었는지 쉬고 있는 중대원들을 모두 연병장에 집합시켜 얼차려를 주기 시작했다. 축구장의 중앙선에서 한쪽 골대 쪽을 향해 달리게 하고 얼마쯤 가고 있으면 호각을 불어 반대 방향으로 달리게 한다. 그렇게 오가는 짓을 반복하게 하면서, 빨리 달리라거나 선착순이라든가 어디까지 가라거나 등의 요구는 없었다. 이유도 모르고 목적도 알 수 없으니, 애써 빨리 달릴 필요도 남보다 멀리 가야 할 동기도 없다. 그렇다고 멈춰 있을 수도 없다. 그저 호각소리에 따라 반사적으로 뛰어야 한다.

얼마 지나고 나자 모두들 중앙선 부근에 몰려 엉거주춤 뛰는 척하고 있었다. 호각 소리는 계속 들려오고, 그 소리가 좀 커졌다 싶으면 조금 더 빨리 움직이는 척하는 정도였다. 일부 몇 사람이 상황을 어떻게든 이해하기 위해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알아내려 했지만, 대부분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조건반사로 움직인다. 시간이 제법 흐르자 몸과 마음이 불편해지면서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어슬렁거리는 정도의 움직임인데도, 심신은 급격히 지쳐 체력은 고갈되고 머리는 서서히 미쳐가는 것 같았다.

의미 없이 반복적으로 강제되는 그 짓이 벌치고는 지독한 벌이었던 것이다. 당시의 군대에서야 얼차려는 일상이었고, 얼차려가 주어지면 대체로 성실히 임한다. 다부지게 응하면 성의를 인정받아 적어도 고통의 시간이나 강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벌은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다. 어떤 생각도 의지도 작용할 여지가 없다.

그런 답답한 와중에 갑자기 한 녀석이 무리 중간에서 튀어나와 쌩하니 달려 나간다. 평소 나와 친하게 지내는 동기였다. 답답함을 견디다 못해 그런 방식으로나마 풀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숨 막히는 상황을 벗어나는 모습이 무척이나 신선했다. 잠시 지켜보다가 나도 뛰쳐나가 함께 달렸다. 저런 돌출된 행동은 혼자서 저지르면 외롭고 위험한 짓이지. 동료가 있으면 외로움도 위험도 훨씬 가벼워지는 법이니, 이럴 때는 응당 친구라면 함께 하는 게 옳다. 그러면 나 역시도 이 괴로운 상황을 벗어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두어 명이 더 합세했다. 은근히 즐기듯 나란히 뛰었다.

그렇게 뛰어보니 정말 가슴이 뚫리는 듯했다. 고갈된 체력이 다시 살아났다. 달리기는 그저 벌이 아니라 소심한 자유가 되었고, 그 무지막지한 체벌에 대한 나름의 작은 저항이 되었다. 그렇게 두어 번 오가며 뛰고 있으니, 그걸 본 선임하사가 벌떡 일어나서 달리기를 멈추게 하고는, 우리에게 욕을 해댄다. "이 새끼들아, 누가 그렇게 열심히 뛰라고 했어? 이것들이 아주 노골적으로 대들며 반항을 하고 있어?"라고 소리친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 얼차려는 애초부터 무의미한 짓을 반복시켜 우리 소대원들을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 가혹한 얼차려는 끝났다. 우리들만 약간의 체벌을 더 받았다. 의미 없는 일의 강제가 가혹한 형벌이 될 수 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그날 이후 내게는 일생의 귀한 습관 한 가지가 생겼다. 일이 과도히 힘들거나 불편할 때, 그럼에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일 때, 나는 그날 뛰쳐나가 달리던 그 친구들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당면한 골칫거리 문제에서 잠시 벗어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일의 프레임을 전환하려 노력한다. 내가 주도하는 나만의 적극적인 게임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리 어렵지 않다. 그 일에 무엇이든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내가 부여한 의미에 따라 충실히 행동하면 된다. 그러면 그 일은 나의 게임이 된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간절히 원하여 선택한 모습으로 바꾸어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고비 때마다 큰 도움이 되었다.

`상황을 주도하되 남에게 휘둘리지 말라(致人而不致於人).` 손자병법의 가르침이다.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도 말했다. "인간에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인간의 마지막 자유는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 즉 자신만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다." 나는 일찍이 그 가혹한 얼차려로 인해 `태도 선택의 자유`를 쉽게 체득한 셈이다. 어느 날 상황에 무기력하게 이끌려가는 자신을 발견하였다면, 상황의 주도권을 내 것으로 전환하는 `태도 선택의 자유`를 가동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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