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19:04 (화)
장모님의 해 뜰 날 ②
장모님의 해 뜰 날 ②
  • 김병기
  • 승인 2022.10.11 2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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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이 밤 못골에서
처갓집서 울리던 노래
유난히 더 그리울 뿐
김병기 가락김해시종친회 사무국장<br>
김병기 가락김해시종친회 사무국장

 

마음이 멀어지면 몸도 멀어진다고 하더니만 한두 달이 한두 해가 지나다 보니 마음은 있어도 몸이 움직이지 못함에 따라 형제끼리의 모임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잔 술에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손뼉을 치며 해맑게 웃으시던 장모님의 노래도 듣지 못했다. 그래도 바다가 환히 보여 마냥 좋다며 대면 면회 못 하고 병원 바깥에서 손을 흔드는 딸에게 두 손을 번쩍 들어 보이셨다.

그나마 방역지침이 바뀜에 따라 마주 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 하며 어제 보았음에도 자주 얼굴을 보여주지 않음을 서운해하시기에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고 병원보다 자식 집이 낫지 않겠느냐? 중론에 김해 처제 집으로 모시게 되었는데, 첫날 불편한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3층 계단 사위집을 한걸음에 올라오셨다.

초등학생에 다니는 손녀들이 왕할머니가 오셨다며 핸드폰을 켜놓고 의미심장한 춤으로 반긴다. 오랜만에 보는 증손녀들의 재롱을 함박웃음으로 대답하며 나도 한번 불러보겠다며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열창에 박수 세례다. 셋방살이로 일찍 모시지 못한 불효를 용서 빌면서 일주일에 한 번은 김해를 대표하는 음식점을 찾아 맛깔 나는 음식을 대접하리라 다짐도 해 본다. 

부잣집 딸로 태어나 전쟁터로 끌려간 지아비를 기다리며 나이 든 시부모님을 봉양하셨던 설골 마을 시집살이 설움을 훌훌 털고 부산으로 내려와 동구 수정동 산비탈에 둥지를 튼 장모님의 노래가 끝자락에 와 있다. 내 살날 언제까지인지 몰라도 너희가 곁에 있어 외롭지 않다는 후렴을 뒤로 하고 계신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언제인가는 떠나야 하는 이 세상임을 누구나 잘 알면서도 애써 모른척하면서 천년만년을 살 것처럼 오르는 집값을 매기며 어디 좋은 투자할 곳이 없는지를 묻는다. 부모님 몸을 빌려 태어나기 전 모습을 알 수 있다면 좋을 것이지만 초등학교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언감생심이다. 과거를 알 수 있다면 미래도 알 수 있다는데, 지금이라도 붙잡아야겠다.

차려놓은 반찬을 품평하시며 맛없다 내치시는 장모님의 세월 앞에 훗날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꽁보리밥도 배불리 먹지 못해 형제들의 밥그릇을 가늠했는데, 굴비 전복에 게장도 손사래 치는 현실에 가슴 먹먹하다가도 한 숟가락 드셔보시라 권한다. 

서늘한 이 밤 못골 처갓집 대청을 울리던 노랫소리가 유난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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