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21:01 (토)
장모님의 해 뜰 날 ①
장모님의 해 뜰 날 ①
  • 김병기
  • 승인 2022.10.10 2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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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가락김해시종친회 사무국장<br>
김병기 가락김해시종친회 사무국장

"내 살아갈 날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세상은 어찌 이리도 좋은지, 너희 아버지 계실 땐 몰랐는데, 내가 이리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올해 아흔두 살 장모님 말씀에 가만히 손을 잡아 드렸다.

허리통증이 심하다며 누워계시다가도 사위 왔다는 말에 기어이 몸을 추슬러 일어나 인사를 건네는 장모님께서 김해 분성산 자락에 오셨다. 아파트 층이 높아 한눈에 들어오는 풍광이 마냥 좋다며 눈길을 떼지 못하신다.

철 따라 피던 소꿉놀이 터전 고향 선산을 뒤로하고 6ㆍ25전쟁을 맞아 부산항 도선사로 일하는 지아비 따라 부산에 내려와 둥지를 틀고, 남들 못지않게 1남 4녀를 키워내신 당당한 여장부이신 장모님께서 세월의 무게에 이기지 못하고 돌아서면 방금 한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치매로 투병 중이시다. 

6ㆍ25전쟁 참전용사이신 장인께서 돌아가신 후, 대문을 열면 눈이 부시는 백합꽃에다 백도라지를 주로 심어 정원을 텃밭으로 가꾸시던 장모님께서는 저녁이면 자식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러다 냉장고를 채운 소주 한잔을 드시고는 잠이 들었다.

간밤의 전화에 놀라 날이 밝자마자 찾아온 막내딸에게 오늘 무슨 일이 있어 이리 일찍 집에 왔느냐며 딴청도 부렸다. 다행스럽게도 마을 경로당이 있어 걱정을 미루게 되었는데, 이놈의 코로나19가 말썽을 부려 마을 경로당이 문을 닫음에 이웃 사이도 마음의 문을 닫았기에 의논 끝에 집 근처 바닷가가 훤히 보이는 요양병원을 찾아 모셨다.

요즘은 아들보다 딸이라더니,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말동무가 되어드렸다.

넉넉한 큰 어른답게 시설에 같이 있는 분과도 형님 동생으로 지내며 병원 올 때 맑은 물(소주)을 챙겨오라 당부도 하셨다. 먹은 데도 허전하다면서 어제 병문안 온 딸에게 어찌 그리 얼굴을 보여주지 않느냐는 투정도 부리며 갖다준 생필품을 꽁꽁 감싸 숨겨 두시곤 하셨다.

하루가 다르게 마음의 문을 닫음에 의논 끝에 새로 아파트를 장만한 처제가 장모님을 모시기로 하였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에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처갓집 옆 부산 대연동 못골시장 횟집을 찾으면 환한 얼굴로 오셔서 "오늘 계산은 내가 해도 되느냐"며 쌈짓돈을 꺼내시던 장모님이셨는데, 모임 인원을 제한하고 젊은층보다 나이 든 분이 감염 위험성이 높다는 권고에 가족 단위이다 보니 야단법석이 남의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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