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19:13 (목)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
  • 이광수
  • 승인 2022.10.06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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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주역 책과 씨름하다 보면 괘효사 해석에 인용한 고대중국의 전적(典籍)이나 역사적 인물, 사건들이 많이 등장한다. 주(註)에서 인용한 내용을 보충설명하고 있어서 주 읽기가 중요하다. 건성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은 활자크기가 한두 포인트 작은 주는 잘 읽지 않는다. 그러나 본문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려면 반드시 주를 읽어봐야 한다. 특히 동양고전 중 주역해설서는 주가 엄청 많아 본문 읽는 것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필자는 저자가 보조설명으로 단 주를 반드시 읽고 하단에 붉은 줄을 친다. 칼럼에 써먹을 소재도 많고 본문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무척 소중하게 챙긴다. 그런데 문제는 본문에서 인용한 내용의 출전인 도서명을 주에 명기하기 때문에 그 책을 사봐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전적들이 온전히 현전하는 것도 있고 일부 전하는 내용을 기록한 전적들도 나온다. 스마트폰을 두들겨 국내에 그 책의 번역서가 나와 있는지 찾아본다. 대개 유명한 전적들은 번역서가 나와 있는데 출판된 지 오래돼 절판된 책들이 많다. 출판사나 중고서적 판매상에 수소문하여 사야만 직성이 풀린다. 이렇게 사 모은 주역관련 고전과 전적들이 1000여 권에 이른다. 아들 셋이 맛난 것 사 먹으라고 매달 보내주는 용돈은 모두 책값으로 쓴다. 중국고전과 역서들은 전집형태로 출판돼 책값이 만만찮다. 힘들게 구한 귀한 전적들이 서재와 안방에 가득하니 책 부자인 셈이다. 역서 구입과 최소 생활비 외는 크게 돈 쓸 용처가 없으니 다행이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不亦說乎兒)`라.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죽을 때까지 책을 벗 삼아 사는 삶이지만 보람은 있다.

코로나가 2년 동안 극성을 부려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했지만 필자에겐 오히려 주역공부에 매진하는 호기가 되었으니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다. 자식들이 어쩌다 한번 들릴 때면 산처럼 쌓여가는 책더미를 보고 실색하는 눈치지만 술ㆍ담배 안 하고 차 안타고 칩거해 무탈하게 지내니 다행스럽게 생각할 거라 믿는다. 2년 전에 차령 10년이 넘은 기름 많이 먹는 차를 소형차로 바꿀까 망설이다가 아예 차와 인연을 끊어버렸다. 주구장창 칩거해 차를 부리지 않고 세워두니 배터리가 나가 정작 급한 볼일로 외출하려고 시동을 걸면 방전되어 꿈쩍도 안 했다. 서비스센터에 연락해 충전하려면 시간도 걸려서 택시를 타고 가야 하니 애물단지가 되어 처분했다. 처음엔 다소 불편했으나 외출이라고는 서점에 가서 책 사고 가끔 지인과 점심 한 그릇 하니 버스 타고 다니는 게 더 편하다. 이제 편리한 대중교통시스템 덕분에 우리 같은 노인들이 굳이 차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한 달에 드는 기름값과 전ㆍ후기로 내는 자동차세, 보험료 등을 환산해보니 매월 30여만 원 정도 여유가 생긴다. 걸어 다녀서 건강도 챙기고 그 돈으로 더 많은 역서들을 사 볼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물론 친구들과 교분이 많아 외출이 잦고 취미생활과 여친도 만나는 분들은 차가 없으면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이 나이에 삿된 짓하다간 늙어서 노망들었다는 소리듣기 십상이고 술김에 실수하면 망신살이 뻗칠 수도 있다. 늙으면 자식 눈치 보고 사는 거라는데 과년한 자식들과 며느리한테도 누가 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건강 유지인데 지금까지 큰 병 없이 잘 지내 병원신세 진적은 없었으니 천만다행이다. 다들 혼자 살면 외로울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도 마음먹기 나름이다. 규칙적이고 단순한 삶에 이골이 나면 번잡한 게 오히려 귀찮고 싫어진다.

독서와 글쓰기가 일상화된 나날은 어찌 보면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한 해 동안 해야 할 일을 정해놓고 수시로 진도를 체크한다. 내년 봄에 주역신서 2권을 발간할 계획인데 남은 일정이 빠듯하다. 마음은 급한데 역서 출간이 쉬운 일은 아니라 신경 쓰인다. 이미 쓴 글과 계속 연재하는 칼럼을 새로 다듬고 주를 달아 편집하다 보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른다. 특히 컴퓨터 자판기 두들기는 속도가 느려서 더 힘들다. 최종교정 때는 숙련된 워드작업자의 손을 빌려야 할 것 같다. 주역뿐만 아니라 컴퓨터에 저장해 둔 수필과 칼럼이 천여 편으로 단행본 10권 분량이다. 이 역시 편집해 책으로 출판하는 일도 병행해야 하니 하루해가 언제 저물었는지 모를 지경이다. 밤엔 좋아하는 드라마 한 편과 명작 다큐는 꼭 봐야 정서적으로 여유가 생기니 이 또한 빠뜨릴 수 없다. 하루일과 중 제일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은 역시 삼시세끼 챙겨 먹기다. 배달 음식은 질색이라 마트에서 장봐와 스마트폰의 레시피 따라 직접 해 먹는다. 지친 하루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운다. 아직 한낮 햇볕은 따갑지만 선선한 바람이 분다. 가을빛 완연한 창원천변을 따라 산책이나 나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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