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3:32 (토)
광적인 팬심과 과열은 독이다
광적인 팬심과 과열은 독이다
  • 김중걸 기자
  • 승인 2022.10.05 2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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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미로김중걸 편집위원
안다미로김중걸 편집위원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축구장 참사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어그러진 팬심은 스포츠는 물론 정치 등 모든 장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악영향을 미치게 해 다시 한번 경계하게 한다. 290여 개 종족이 모여 사는 인도네시아의 경우 축구가 지역, 종족 간 갈등 표출의 매개ㆍ분출구가 되는 경우에는 그 폭발력은 엄청나다. 참사는 어쩌면 예고가 됐는지도 모른다. 이 사고 이전에 인도네시아에서는 프로리그가 시작된 이래 과격한 축구 응원 문화로 인해 78명이 사망했다. 이번 축구장 사고에는 어린이와 청소년 32명과 경찰관 2명 등 125명이 사망했고 부상자만 320명에 이른다. 지난 1일 인도네시아 동부 자바주 말랑 리젠시 칸주루한 축구장에서 열린 `아레마FC`와 `페르세바야 수라바야 축구팀` 경기 후 밤 10시 사고가 벌어졌다. 아레마FC가 홈 경기에서 페르세바야 수라바야에 23년 만에 2:3으로 패하자 화가 난 홈팀 관중 일부가 선수와 팀 관계자들에게 항의하기 위해 경기장 내로 뛰어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장엔 수천 명의 관중으로 가득 찼다. 경찰이 난입 관중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최루탄을 쏘자 수천명의 관중이 최루탄을 피하려 출구로 달려가다 뒤엉켜 넘어지면서 대규모 사망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홈팀이 졌다고 해서 경기장으로 난입한 홀리건도 문제이지만 경찰의 과잉 대응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경기장에서는 최루탄 사용을 금지했는데 경찰이 이 규정을 어긴 것으로 드러나면서 빚고 있는 논란이다.

인도네시아 프로 축구1부 리그인 리가1의 18개 팀은 `마니아`라 불리는 광적인 팬클럽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참사를 빚은 경기의 홈팀 `아르마FC`의 팬클럽은 `아르마니아(Aremania)`로 불리며 `마니아` 중에서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가 연고인 `프르시자 자카르타`의 팬클럽 `자크마니아(Jakmania)`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응원 문화는 마치 민병대처럼 거친 것으로 유명하다. 팬클럽에 가입하면 응원 훈련에 참가해야 하는 등 엄격하다. 메가폰을 들고 지휘하는 응원단장이 구령에 따라 함성을 지르고 정신교육을 받는 모습은 군대의 전투훈련과 비슷하다고 한다. 이들은 인도네시아어로 `죽을 때까지`라는 뜻인 응원 구호 `삼파이 마티(sampai mati)`를 외친다. 죽을 때까지 지지 팀을 위해 응원하고 싸운다는 의미다. 이들은 경기 중 섬광탄을 쏘고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불리해지면 상대 팀 순서를 향해 물병이나 심하면 돌까지 던지는 등 이 같은 과격함 때문에 지역 라이벌 간 경기때는 양쪽 팀의 응원단이 충돌해 유혈 사태가 벌어지는 일이 빈발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 축구협회와 경찰은 지역 라이벌 간 경기 때는 원정팀 응원단의 출입을 금지하고 주요 경기에서는 전투경찰과 진압 차량 배치는 물론 경찰 장갑차에 선수들을 태워 이동시키기도 한다. 이번 사고가 난 경기에서도 원정팀인 페르세바야 수라바야 팀 응원단은 출입이 금지됐고 전투경찰까지 배치됐다고 한다.

경찰의 사고 예방 조치에도 주요 라이벌 경기에서 응원단의 과격한 행동으로 각종 사고 발생했다. 지난 2016년에는 프로시자 자카르타와 인근 도시 반둥을 연고로 하는 `프로시브 반동`과의 경기가 과열되자 인도네시아 프로 축구 협회는 두 팀의 경기를 중립 지역에서 진행키로 했다. 원정팀인 자크마니아 회원들의 참관을 금지했다. 그러나 자크마니아들은 경기관람을 위해 버스를 대절해 경기장으로 향했다 이동 중 프르시브 반둥 응원단 버스와 마주치면서 고속도로에서 대규모 패싸움이 벌어졌다. 지난 2019년에는 23세 남성이 자크마니아라는 사실을 숨기고 반둥에서 열린 경기를 보기 위해 숨어 들어갔다가 반둥 팬들에게 발각돼 집단구타를 당하면서 사망했다. 인도네시아 축구 문화 개선운동 비정부기구 `세이브아워사커(SOS)`는 1994년 프로리그가 시작된 이래 인도네시아에서 과격한 축구 응원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78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축구 과열응원으로 역대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난 사건은 1964년 페루 리마에서 열린 페루와 아르헨티나의 도쿄올림픽 예선전이다. 판정에 흥분한 관중들이 경기장으로 몰려들자 경찰이 최루탄을 쐈고, 도망가던 팬들이 뒤엉키며 328명이 사망했다. 2001년에는 가나 수도 아크라에서 클럽 축구 경기 중 일부 관중이 흥분하자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했고, 피하던 관중들이 넘어지면서 126명이 숨졌다. 1989년에는 영국 축구협회컵(FA컵) 준결승전에서 96명의 리버풀 팬이 압사 사고로 숨지기도 했다. 이번 인도네시아 사고는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사망자를 낸 축구장 사고로 기록될 것이라고 한다. 잘못된 응원 문화, 과열은 독(毒)이다. 비단 스포츠에 국한되지 않는다. 스스로를 경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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