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23:17 (목)
픽션과 상상으로 본 김수로왕의 결혼작전
픽션과 상상으로 본 김수로왕의 결혼작전
  • 도명스님
  • 승인 2022.10.03 2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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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br>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 음력 7월, 가락국 왕궁에는 아침 일찍 회의가 열렸다. 매달 초 정기적인 궁중 조회가 있었지만 오늘은 월초가 아니라 하순인 27일이었다. 가락국을 이끌어 가는 주요 대신들인 구간의 집에 어제 오후 갑자기 대궐에서 전령들이 와 수로왕의 전갈을 전했다. 내용은 내일 아침 묘시까지 입궐하라는 지시였다. 구간들은 내심 `무슨 일로 왕께서 이렇게 급히 부르시나`하고 생각했다가, 왕께서 7월 초하루 조알(朝謁) 때 조만간 결정을 내리겠다는 그 문제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총각 군주 수로왕의 왕후 간택에 관한 결정이었다. 

6년 전, 수로왕은 구지봉의 탄강 퍼포먼스로 구간을 휘어잡고 가락국을 건국하였지만 아직 왕후의 자리가 공석이었다. 그래서 오늘, 구간들은 자신들의 간청과 압박을 못 이긴 왕께서 결국은 그들의 어여쁜 딸 중에서 규수를 선택할 것으로 생각했다. 이에 구간들 모두는 자신의 딸이 간택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궁으로 향했다. 특히 구간 중에서 수장이었던 아도간의 기대감은 더욱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 수로왕의 왕위 옹립에 아도간의 영향은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도간은 원래 수로왕의 부친인 고조선의 왕족 천광의 신하였다. 언젠가 나라의 멸망 후 그는 천광의 밀명을 받아 선발대를 이끌고 그의 일족과 자신이 안착할 터전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부여의 상인 집단을 따라 반도의 끝까지 오게 되었고 자리를 잡는데 5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버렸다. 그동안 이웃 나라 부여에 머물던 천광과 그의 아내는 별세했고, 그가 떠나올 당시 열 살이었던 천광의 아들 선웅은 열다섯의 훤훤 장부가 되어있었다.

여러 부분에서 아도간의 능력은 실로 탁월했는데 그는 뛰어난 상술과 리더십으로 불과 수년 만에 한반도 남쪽 지역의 아홉 수장 중 한 명으로 추대받게 되었다. 이윽고 입지가 안정되었을 때 그는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먼 곳에 있던 선웅을 그의 별채로 모셔왔다. 그는 선웅과 함께 계책을 짰고 삼월 삼짇날 계욕일, 구지봉의 제천의식을 통해 선웅을 하늘에서 내려온 신성한 인물로 연출했다. 

선웅은 드디어 가락국의 왕으로 추대되었고 김수로왕으로 불리었다. 준비된 왕 김수로는 국정운영의 노련함은 물론 만백성의 어버이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6년간 안팎을 살피다 보니 나이가 어느덧 스무 살이 넘도록 결혼을 못 했다. 이에 신하들과 백성들은 만나기만 하면 말하는 첫 번째 화제는 수로왕의 혼사였고 그것이 구간의 주청으로 이어졌던 까닭이다. 

 

물론 수로왕도 구간과 백성들의 간청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부친 천광이 부탁한 부국강병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왕비 집안의 외척 세력이 강해져선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그의 마음은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수년 전 인연한 인도 아유타국 왕자 출신 장유화상의 권유 때문이었다. 과거 수로왕의 부친 천광은 대륙의 유목민들로부터 전파된 불교를 신앙했으며 소년 시절 자신도 신앙은 물론 직접 수행까지 하고 있었다. 인도의 상인들과 함께 왔던 장유화상을 만난 이후 그의 수행력은 더욱 깊어졌으며 그로부터 나오는 기품과 지혜는 신령스러움마저 자아내게 했다.

수로왕과 장유화상은 이때부터 `가락국 불국토 프로젝트`를 꿈꿨다. 얼마 후 화상은 왕에게 어여쁘고 지혜로운 여동생인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을 왕후로 맞이할 것을 청해 승낙받았다. 화상은 상인들 편으로 밀사를 보내 부왕과 모후에게 그간의 사정을 말하고 동의를 구하였다. 그의 뜻에 따른 부왕 부부는 허황옥 공주에게 짐짓, 간밤 꿈에 나타난 제석천의 지시를 얘기하며 가락국의 왕 김수로에게 시집갈 것을 권유했다. 이에 효심 깊은 공주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2만여 리의 바다를 헤치고 가락국으로 오는 중이었다


한편 수로왕은 밀사를 통해 공주가 오는 뱃길과 도착하는 날짜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구간들이 은근히 압박해 올 때도 "하늘이 나를 왕으로 점지했으니 왕비도 점지해 주시리라" 하며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이렇게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었던 수로왕은 구간들과 조회를 할 때 그들에게 다른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유천간은 망산도로 보내 공주가 오는 배를 조망하게 하고, 신귀간에게는 준마를 몰고 승재에 대기하게 하였다. 

이윽고 공주의 배는 망산도 서남쪽 가덕도 해안 모퉁이에서 조망되었으며 망산도에 있던 유천간은 즉시 봉화를 올려 공주의 도착을 알렸고 신귀간은 수로왕께 기쁜 소식을 전했다. 다음 날 수로왕과 공주는 주포의 만전에서 만나 이틀의 신혼을 보내었고 가야의 진정한 역사는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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