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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ㆍ청시대의 역학자 ⑥
명ㆍ청시대의 역학자 ⑥
  • 이지산
  • 승인 2022.09.2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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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연구가 이 지산

청나라의 강희제가 이광지 등에게 명하여 편찬한 <주역절중>은 한역과 송역의 의리파와 상수파의 다른 학설을 절충해 편찬한 주역집설이다. 강희제는 이에 한발 더 나아가 부항 등에게 명하여 <주역절중>의 편찬의도를 살리면서 송역과 한역의 의리와 문사를 공평하게 밝혀낸 <주역술의>를 편찬케 하였다. <주역술의>는 왕필(의리역)과 정현(상수역)의 시비를 바르게 결정함으로써 더 이상 역에 대한 이의가 없도록 했다. <주역절중>이 의리파 송역에 여러 설을 절충한 것이라면, <주역술의>는 한역과 송역을 한데 얽어 하나로 집설한 것이다. 이로써 청나라 중기 이후의 의리파 송역은 새롭게 발흥한 박학역(博學易)의 세에 눌려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청대 중엽의 의리파 역학자인 청계거사 정정조(程廷祚)는 일생을 역학연구에 몰두해 <정씨역통> <단효구시설> 6권과 <역설변정> 4권을 지었다. 그리고 10년에 걸친 저작 기간을 들여 그의 대표작인<대역택언> 36권을 집필했다. <대역택언>에는 6가지 조목으로 제가의 설을 종합해 역을 해석했다. 제1조목은 정의(正義), 제2조목은 변정(辯正), 제3조목은 통론(痛論), 제4조목은 여론(餘論), 제5조목은 존의(存疑), 제6조목은 존이(存異)로 자신의 의리철학을 논설했다. 그는 소강절, 주돈이, 주희의 상수학을 폐기하고 양한의 호괘, 변괘, 괘기설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의 의리중심 역학론은 <청계문집>과 <역론>에서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또한 도가들의 장생설과 불가들의 무생설 등 그 어느 설도 역의 객관법칙에 어긋난다고 했다. 그는 주역의 본질은 지극한 도의 동(動)과 정(靜)의 변증법적 관계라고 주장하면서 오직 의리역 위주로 논변하였다.

청 중엽 이후의 역학가로는 오여륜(吳汝綸)과 마기창(馬其昶)이 있다. 오여륜은 진사에 합격해 벼슬을 한 문단의 대가였다. <역설>2권을 지었는데 현언(玄言)에 의거해 역을 훈고했다. <태현>을 지은 양웅의 설을 추종하여 고금의 여러 설을 채록해 상수에도 통하였다. 그는 또 <주역대의>를 지어 인간사만을 역해로 취하고 주술적인 현모함은 취하지 않았다. 먼저 괘효사를 주석하고 고본 주역(십익) 순서로 역을 해석했다.

마기창은 오여륜을 사사하여 <역비씨학> 8권과 <역례거요> 1권을 지었다. 그는 <역비씨학>에서 주진에서 청말에 이르기까지 400여 가지 역설을 채집하여 참고해 경전을 주석했다. 그의 학설은 인증이 광대하고 의리 위주로 해석했다. 괘명에 대한 인식이 깊었으며 비직의 의리역을 표방해 청대 박학역과는 다른 면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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