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좀스런 영웅들
우리의 좀스런 영웅들
  • 류한열
  • 승인 2022.09.1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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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영웅은 시대를 앞서서 길을 연다. 우리가 바라는 영웅상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학교서 배웠다. 시대를 연 영웅들이 있어 오늘날 찬란한 한국 역사를 맞고 있다고. 우리 시대 영웅은 하늘을 날지 못하고 땅에서 빌빌대는 형세을 띠고 있다. 우리가 안고 사는 슬픔이다. 영웅은 자력으로 하늘을 날지 못해도 주위에서 힘을 떠받치면 날기도 한다. 그래도 좀체 힘을 받아 위로 솟구치기 힘들어 보인다. 영웅 부재 시대에 영웅을 바라는 소망마저 꺾이고 있다.

역사가 만든 영웅엔 허상이 많다. 영웅을 가르는 기준이 모호하기도 하고 격한 역사의 굴곡에서 영웅 대접하려 해도 상대 쪽에서 밥상을 엎는 경우가 허다했다. 체질적으로 아니면 국민성에 덧대어, 영웅이 탄생하기 힘든 풍토라는 희안한 풍수지리설이 횡행한다. 영웅을 고대하는 심리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이다. 영화에서 만나는 `어벤저스: 지구 최강의 영웅들`은 우리 부류가 아니다. 대한민국 선수도 아니라 더더욱 거리가 멀다.

안중근 의사를 다룬 소설 `하얼빈`이 요즘 많이 읽히고 있다. 우리의 영웅을 우리 곁에 불러와서 보통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히토 히로부미를 향한 총알 세 발은 기울어가는 조선 혼의 깨우침이었다. 이 소설에서 총성의 메아리가 너무 허무하다. 서툰 대화에서 목표를 정하고 총질하는 포수 안중근을 또렷이 떠올린다. 겨눈 총구에 쓰러진 적국의 사람이 엘리트 국민을 대표하고, 조선 민중은 길거리에 똥물이나 끼트리는 미개인이다. 되레 `이토`가 살고 `안`이 죽는 허무주의를 우리 영웅에게 입혔다.

우리의 영웅이 여러 장의 방탄 조끼를 껴입고 땅을 기고 있다. 영웅의 말에 새겨들을 게 없다. 변명을 더하다 보니 영웅의 말투는 없다. 숱한 의혹의 중심에 서서도 의혹을 외면하는 품새는 영웅 근처에 머무는 듯하다. 여러 분야에 의혹의 꼬리를 달고도 팬덤을 형성하는 치세 또한 영웅의 기품이 흐른다. 혹 영웅으로 뜰까 마음 졸이는 사람에게는 지옥이다. 영웅이 타락해도 우리가 담고 있는 영웅은 결코 그 영웅과 맞닿을 구석은 전혀 없다. 일그러진 영웅이 우리의 심기를 흐트러 놓는다.

오징어게임이 아시아 최초로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아 황동혁 감독과 이정재 배우가 주목을 받았다. K콘텐츠가 세상을 제대로 품고 있다. 일방적인 미국 문화에 휩싸여 미국 영웅의 활약을 영화관에서 박수하며 보던 때를 돌아보면 다른 하늘이 열린 세상이다. BTS는 어떤가. 빌보드차트 상위 차지는 비틀즈를 만난 기분이다. 벤허의 마차 경주도 별것 아니라는 교만을 `기생충`이 키워줬다. 다른 나라 영웅이 하늘에서 무수히 떨어지는 환상을 주고 있다. 이런 영웅 부재의 시대에.

`이제 우리 속의 우리가 아니라 우리 속의 세계입니다`라고 말한 오영수 배우는 지난 1월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부분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이번 에미상 뒤풀이에서 오영수 댄스가 관심을 모았다. 대중문화 강대국으로 가는 자신감이라 붙여도 틀리지 않다. 작은 영웅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진정한 영웅은 우리의 가슴에 내린다. 정치 쪽에서 영웅이 되려는 부나비의 춤을 보는 게 서글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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