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02:33 (목)
반려 닭 말복이
반려 닭 말복이
  • 장덕기
  • 승인 2022.09.13 2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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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기 장덕기 내과 의학박사
장덕기 장덕기 내과 의학박사

8월 초복 하루 전이었다.

닭 한 마리 잡아갈 테니 해서 드시겠냐고 해루질을 같이 다니는 J에게 전화가 왔다. 먹겠다고 했더니 자루 속에서 닭이 퍼덕거리고 있었다. 잡아 온다는 말은 상식적으로 조리할 수 있는 상태로 들고 온다는 이야기처럼 해석했는데 이렇게 서로 이해의 포인트가 다를 줄이야. 청계로 몸이 새하얗고 부리만 빨간, 예쁘게 생긴 수탉이었다. 8층 옥상 정원에 풀어 놓고 먹이도 주고 말도 붙이며 다가가서 사진도 찍으며 틈이 나는 대로 같이 놀았다.

며칠이 지나자 식사시간이 되면 내 옆으로 와서는 조용히 앉아 있거나 따라다녔다. 닭과 반려 관계가 형성되다니…. 어느새 말복이 지났고 이때까지 살아 있는 저 닭의 만수무강을 빌면서 이름을 말복이라 지었다.

이름을 짓고부터 그게 생존의 의미가 됐는지 새벽이 되면 울기 시작했다. 가끔은 일정한 시간과 관계없이 우는 바람에 뇌 자명종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나? 하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무난하게 적응해 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러던 어느 날 `닭이 울어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주변 사람 한 분이 클레임을 걸어왔다.

사정이 이렇고 저렇고 이리됐으니 넒은 마음으로 이해해 달라며 사과의 의미로 박카스 한 통을 사서 달래드렸다. 내게 생명을 달고 왔으니 그 또한 그 녀석의 복인지라 다소 책임 의식이 느껴져서 수명이 다할 때까지 옆에서 잘 돌봐주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일어나보니 말복이가 사라져버렸다. 말복이 실종사건? 도대체 8층에서 어떻게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과문한 탓인지 강아지 찾는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닭을 찾는다는 전단지는 아직 보지 못했다. 혹시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시는 분이 계신다면 그 해결 방법을 여쭙고 싶다. 걱정이 된 나머지 전단지를 작성할까 고민하던 중 청소 할머니와 병원 직원들이 말복이 우는 소리가 병원 근처에서 들린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새벽에 일찍 깨어 들어보니 녹음해 놨던 울음소리와 파형이 같았다. 틈을 내어 이틀을 헤맨 결과 새로 개업한 이불집 주차장에 수탉 말복이와 암탉이 두 마리 있었다. 개업 준비를 하며 새벽에 가게를 나오니 다리를 다친 닭이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고 했다. 아마도 8층 난간에 앉아 있다가 미끄러져 떨어진 모양이다.

이렇게 주의력이 없는 닭이 내게 오다니? 다리를 심하게 절면서 먹지도 않아 암탉을 두 마리 사서 넣어주니 기력을 회복하고 다리도 절지 않았다고 한다.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옥상에 닭장을 마련한 후 데리러 오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닭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내게 온 생명이라 끝까지 거두고 싶은 마음이 말복이에 대한 예의라고나 할까?

비록 며칠간 남의 집에서 새벽 미명을 깨우는 말복이 꼬끼오 소리가 아쉽긴하지만 그 밝고 경쾌한 소리가 새벽을 몰고오는 길을 열어주는것이 분명하다.

꼬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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