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0:01 (금)
소통령 노릇하는 고을 원님들
소통령 노릇하는 고을 원님들
  • 이광수
  • 승인 2022.09.04 2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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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지난해 행정안전부에서는 도내 18개 시.군 중 소멸위기지역으로 11개 시ㆍ군을 지정해 소멸대응기금을 지급키로 했다. 대상 시군은 밀양시(인구 10만 3000명), 거창군(6만 2000명), 합천군(4만 4000명), 산청군(3만 4000명), 의령군(2만 6000명), 창녕군(6만 명), 하동군(4만 3000명), 함안군(6만 1000명), 함양군(3만 9000명), 고성군(5만 명)이다. 현재인구도 출생률의 급감으로 감소세가 지속돼 30년 내에 기초지자체의 지위를 잃을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시ㆍ군마다 인구증가를 위해 출산장려금지급, 농어촌 정착자금지원, 농촌 한 달 살기 체험프로그램운영 등 온갖 농촌인구유인책을 쓰고 있지만 실효가 없다. 특히 서부경남 군부의 경우 해마다 1000명 내외의 인구가 농촌을 등지고 있어 농산촌공동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OECD 38개국 중 최저출산율(합계출산율 0.8)로 인해 인구의 자연감소를 막을 뾰족한 묘책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장차 결혼 안 한 비혼ㆍ미혼남녀가 계속 늘어나 집집마다 몽달귀신(?)이 속출할 것 같아 두렵다.

이처럼 인구감소가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정원은 대폭 증가했다. 인구는 줄고 모든 행정업무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할 만큼 전산화됐는데 왜 세금으로 먹여 살리는 공무원 수는 늘었을까. 이는 전 정부의 무분별한 공공일자리 창출 정책이 빚은 아이러니로 구신(具臣, 구색만 갖춘 유명무실한 신하)이 많다는 증거다. 군부의 주요 업무였던 농정은 산업에서 차지하는 농업부문비율(5% 내외)의 대폭 감소와 식량자급으로 노령화에 따른 복지업무와 준도시행정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도시 동 인구에 불과한 군에 근무하는 인력은 600~700명이다. 물론 관할 지역이 넓고 농정업무 대신 농촌인구의 고령화로 복지업무가 늘었다고 하지만, 이장과 통장이 현장복지업무를 거의 대신한다. 여기에 조직 구색 갖춘다고 서기관이 4~5명이니 유구무언이다. 필자가 재직했던 구 창원시 때는 인구 50만 명에 정원 1000명이 일했다. 재정자립도가 20% 미만인 군이 군세로 1년간 걷는 자체세입으로는 직원 6개월 치 인건비 충당도 안 된다. 열악한 지방재정을 감안해 지방교부세와 국고보조금으로 겨우 살림을 꾸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형편임에도 군수가 되면 마치 조선시대 고을 원님이나 된 것처럼 소통령 노릇을 한다. 지난해 통계를 보니 민선 기초지자체장의 30%가 각종 이권과 인사비리에 연루되어 경고를 받거나 형사처분됐다고 한다. 이런 작은 군에도 군비지원을 받는 관변단체수가 대도시와 다름없이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들 단체장들은 군수나 이권 있는 단체장과 군의원을 노리며 군웅할거 자리다툼이 치열하다고 한다.

지난 6월 1일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되어 새로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이 탄생했다. 전임자와 후임자의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인수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대도시라면 업무가 많아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인구 3만~5만의 군부에 굳이 업무인수위구성이 필요한가. 고을 원님 폼 잡는 것도 분수를 넘어서면 관폐가 된다. 업무인수인계는 부서별로 작성하면 간단히 끝나는데 거창하게 인수위원회까지 꾸려 격식을 차리니 점입가경이다. 물론 거명은 안하지만 이런 절차를 생략한 현명한 군수도 있었다. 인구 2만 6000명의 모군에서는 전직 두 군수가 내리 비리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못된 짓하려고 군수가 된 모양이다. 이는 자격 미달의 지자체장을 뽑은 그 지역민들의 수준도 문제다. 사돈의 팔촌에 학연ㆍ지연까지 얽힌 인간관계로 주권을 행사하는 중우들의 사고방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한국의 지방자치도 백년하청이다. 또 도시 동 규모의 인구에 600명이 넘는 인력이 상주함에도 대도시처럼 시설공단과 재단, 사업소 등을 중복 설립해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이는 선거캠프 보은인사용 위인설관으로 중앙정부가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 이러니 고을 원님 자리에 너도나도 출사표를 던지며 입직경쟁이 치열하다. 일부 시군구에서는 아직도 관선시대의 고질적인 병폐였던 5급 이상 승진 인사 시 대가성 금품이 관행처럼 오가고 있다니 통탄할 일이다. 이는 성실하게 일하는 일선공직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파렴치한 행위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망국지병이다. 공직을 치부의 수단으로 삼거나 본인을 비롯한 친인척들의 사업방패막이나, 이권제공기회로 삼는 탐관오리는 정부의 강력한 서정쇄신책으로 발본색원해야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천신만고 끝에 세계 10위의 경제 강국으로 도약해 선진국이 됐다. 천심을 저버리고 민심을 배반하는 부도덕한 자는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이제 더 이상 소통령 노릇이나 하는 후안무치한 자를 리더로 뽑아서는 안 될 것이다. 임금이 임금 노릇을 제대로 못 하는 것이 아니라 할 능력이 있으면서도 안 하는 것이 문제라는 맹자의 말(王之不王, 不爲也, 非不能也)을 재음미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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